‘회개용서운동’의 목표는 예수 안에서 하나됨이다
상태바
‘회개용서운동’의 목표는 예수 안에서 하나됨이다
  • 장종현 목사
  • 승인 2019.05.28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종현 목사의 개혁주의생명신학 7대 실천운동 3) 회개용서운동⑤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버림받고 죽음의 문턱에서 빠져나와 종으로 팔려갔던 요셉이 자기를 팔아넘겼던 형들을 용서한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받고 모함 받아 곤경에 처했지만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창 39:21)라고 하시고, 또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 39:23)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은 바로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신을 알아보고 그를 팔았던 악행 때문에 근심하고 한탄하는 형들에게 보복하지 않고 놀라운 용서를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7~8 상). 요셉의 용서는 충동적 용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보복당할까 두려워하는 형들을 위로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형들을 용서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당하시며 우리를 용서하신 것을 참 많이 닮았습니다.
회개용서운동의 궁극적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입니다. 한국교회가 분열을 치유하고 다시 하나 되는 길은 회개용서운동입니다.

근래에 한국장로교회 가운데 교회 연합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05년 9월 27일 합동측과 개혁측이 전격적으로 연합함으로 두 교회가 1979년 분열 후 26년 만에 재결합한 것도 한 예입니다.

우리 백석대학교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에 의해 형성된 총회가 아닙니다. 이는 오랜 역사를 가진 총회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생존해 온 한국장로교회는 일제의 강압과 한국전쟁을 겪은 후인 1950년대에 여러 차례 분열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총회는 그런 분열들로 인해 생겨난 교회가 아닙니다. 선교사들이 세운 총회가 아니기에 인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외부 지원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1970년대 초부터 한국교회가 놀랍게 성장하면서 기존 총회들과 신학교들이 한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들의 수를 충족시키기에 역부족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토양에서 자라난 자생(自生) 총회입니다.

복음의 씨가 뿌려진 후 열매 맺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함에도, 우리 총회가 상대적으로 매우 짧은 기간에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은 주도적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1976년 자생 총회로 시작했으므로, 한국장로교회의 분열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백석총회가 설립 후 40여 년 동안 한국장로교의 하나 됨을 실현하기 위해 연합의 노력을 지속해 온 것은 한국 초기 선교사들이 1907년 단일 장로교회를 세워 교회 일치와 연합의 의지를 실천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우리 총회가 다른 총회들과 통합을 이루어왔고, 특히 2014년 12월 16일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총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총회가 통합한 것은 우리 총회의 외연 확대라는 실제적 의미뿐만 아니라, 분열을 거듭해온 한국장로교회의 상처를 치료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도들의 신앙고백대로 교회의 하나됨을 천명했다는 교회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용서하고 하나가 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지만 서로 용서하고 하나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분쟁, 분열과 다툼은 모두 서로 용서 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는 자들은 용서하지 못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