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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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시대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9.05.0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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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 목사의 교회사 산책 영국의 청교도 운동(1)
1570년 로마교황이 엘리자베스 여왕을 파문하자 그때부터 가톨릭은 영국에서 반역자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때를 맞추어 청교도들은 영국 국교회(성공회) 안의 가톨릭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자 하였습니다. 메리 여왕의 치하에서 추방당하거나 망명한 이들, 또 자발적으로 제네바에 가서 대륙의 개혁 교회 신학을 배웠던 이들은 엘리자베스 시대가 오자 대거 귀국해서 개혁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개혁 신앙이나 설교를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목회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모든 종교 행사는 국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따를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성경대로 확실한 종교개혁을 진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불만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가장 온건한 파들은 감독 제도만 반대하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캠브리지 대학의 토마스 카트라이트를 비롯한 청교도 지도자들은 1572년, 성공회식 ‘감독제도’ 대신에 ‘장로제도’로 조직을 개편하자고 주장하였습니다. 영국에서 최초로 청교도주의를 주장한 카트라이트가 주장했던 장로제도는 6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①대주교와 주교의 명칭 및 직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②교회 직책은 신약성서의 모본을 따라 감독(목사와 장로)과 집사만 두어야 한다. ③감독은 순수하게 영적 기능만을 발휘해야 하며 집사는 빈자의 구제에만 종사해야 한다. ④목사는 여러 교회를 목회할 것이 아니라 한 교회를 섬겨야 하며 신도를 거느려야 한다. ⑤목사의 인사와 주교의 임명에 있어서 주교 한 개인의 청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 지교회의 선거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 누구도 교회 임명을 위해 뇌물을 쓰지 말아야 한다. ⑥교회정법의 권위를 목사와 장로회에 두어야 한다. 교회 직책들은 국가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의해서 세워져야 한다.
 
이는 칼뱅의 ‘기독교 강요’에서 가르친 교회 체제를 따라서 당회를 조직할 것과 회중들이 목회자를 위임할 것을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배 형태도 거의 외형상 가톨릭과 비슷한 예배를 대폭 수정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는 결코 혁명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여왕과 주교들은 이러한 주장들이 안정을 위협한다고 보았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색출하여 무서운 벌을 가하였습니다. 

결국 장로교 운동은 1592년 경 일단 수그러들었고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일단 국교에 머물면서 왕에게 충성하며 개혁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칼뱅도 영국 성공회의 체제를 특별히 비난하지는 않았습니다. 

최초의 분리주의자는 캠브리지에 거주한 로버트 브라운이었습니다. 이들은 정치와 종교가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에 놀란 정부는 이들에게 잔인하고 무서운 박해를 가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확실하게 자기 명령대로 집행하는 이를 찾으려 여러 번 대주교를 바꾸다가 캔터베리 대주교인 존 휫기프트에게 국교회에서 벗어나려는 청교도들을 벌하는 역할을 맡겼습니다. 그는 청교도들이 국가의 질서에 순응해야 할 것을 선언하고 교회에서도 국왕의 수장령을 인정해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거스른 이들은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그 결과 200여 명의 교구 사제들이 그 직에서 쫓겨났습니다.            

평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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