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앞으로 나아갈 때 용서의 통로가 된다”
상태바
“십자가 앞으로 나아갈 때 용서의 통로가 된다”
  • 임석순 목사
  • 승인 2019.05.07 13: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3) 용서의 통로가 되는 길

용서는 “하늘의 사람이 죄악 된 이 세상 속에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세상,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세상에서도 평온을 유지하는 상태가 바로 용서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내가 이렇게 최선을 다 하는데,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했는데...’ 이런 생각들, 자기 ‘의4’가 용서의 통로를 막습니다. 어떤 것도 우리의 ‘의’는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 ‘의’가 드러나는 순간 절대로 용서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용서의 통로로 쓰이는 사람은 스스로가 하늘의 사람인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용서의 통로가 되는 길

1. 십자가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면 다 은혜일뿐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알게 됩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아버지 나는 철저한 죄인이었습니다. 이런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내가 새 생명을 받은 자로,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사람만이 용서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2. 성령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에 대한 오해가 많습니다. 성령 충만은 결코 이상한 어떤 현상이나 은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의 증거는 딱 하나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엘2:28)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한다는 것은 바로 하늘의 이야기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세상 이야기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 이야기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늙은이가 꿈을 꾼다는 것 역시 하늘나라를 꿈꾸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늙으면 늙을수록 더욱 하늘나라를 꿈꾸게 됩니다. 하늘나라를 이야기하고 그 곳에 갈 것을 기다리며 기대합니다. 젊은이가 이상을 본다는 것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입니다. ‘이상’은 ‘이데아’입니다. 완벽한 세상, 꿈꾸는 나라를 말합니다. 감각으로 움직이고 눈에 보이는 현실이 중요한 젊은이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 나라를 꿈꾸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를 본향인 하늘나라에 그리고 하나님께 단단히 묶는 능력입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행7:55) 스데반은 죽음 앞에서 자신이 가게 될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신이 가게 될 본향을 보며 사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용서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용서의 주체가 되어 용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용서의 통로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우리의 힘으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확인하며 용서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우리의 ‘의’로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져야 합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장차 가게 될 본향, 곧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세상 것에 얽매이지 않기에 용서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용서가 힘들다면 십자가 앞에 나아가십시오. 나를 힘들고 괴롭게 하는 세상을 바라보며 분 내고 낙망하지 말고 본래 내가 있었던 그곳,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갈망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