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하나의 관문…언제 부르시더라도 두렵지 않아요”

각당복지재단 명예이사장 김옥라 장로가 말하는 ‘삶과죽음’ 정하라 기자l승인2019.04.26 16:53:16l수정2019.04.29 09:16l1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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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안 컴퓨터 앞에 앉아 영어성경을 바라보며 능숙하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은 100세라는 나이를 도무지 떠올리기 어렵게 만든다. 붉은 재킷을 차려입고 곱게 화장한 모습은 현장에서 활동해도 어색하지 않을 전문직 여성의 모습이다.

거동하는 것이 조금 불편해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100세가 넘는 그의 나이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너무 정정하시다”는 기자의 말에 김옥라 장로(101·정동제일교회)는 “나도 내 나이를 잊은 채 그저 감사함으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며 얼굴에 밝은 웃음을 띄워보였다.

▲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사택에서 만난 김옥라 장로는 “인생 켜켜이 죽음의 고비도 있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도 이날까지 이끌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만 101세를 맞이한 각당복지재단(이사장:라제건) 명예이사장 김옥라 장로의 하루 일과는 신문을 읽고 영어성경을 타이핑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남들은 마음 놓고 쉬어도 될 때라고 말하지만, 독서와 배움이 그의 삶이자 일과가 되어버렸기에 이제는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사택에서 만난 김옥라 장로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활력 있는 삶을 사는 비결이 “그저 어제와 같이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라며, “인생 켜켜이 죽음의 고비도 있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도 이날까지 이끌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화답했다.

대학 졸업 이후 일에 손을 떼지 않았다는 그의 말에서 전문직 신(新)여성으로 활발히 활동했을 그의 젊은 시절이 연상된다. 김옥라 명예이사장은 일제강점기 황폐하던 시절에 ‘대한소녀단 걸스카우트’를 처음으로 창단해 간사장으로 15년간 활동했으며 한국여성 가운데 처음 세계감리교여성연합회 수장을 역임했다.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며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막상 은퇴를 맞이할 시기가 되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남편 라익진 박사와 함께 기도하던 그는 자원봉사단체를 조직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계명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나님께 이 일을 끝냈지만 저는 아직도 건강합니다. 이제부터는 비행기를 그만 타고 우리나라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 끝에 남편과 의논하면서 설립한 것이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입니다. 지금의 각당복지재단이지요.”

‘자원봉사’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80년대 시절, 우리나라에서 복지라는 개념을 가지고 활동을 시작한 선구적인 단체였다. 이후 사회복지법인을 등록해 정식으로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아 자원봉사자들을 교육했으며, 필요가 있는 곳에 이들을 연계시키는 역할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 정부도 점차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고 전국의 각 구에 복지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단체가 하고 있던 일들을 정부 산하의 복지기관이 맡게 되면서 차별화를 둘 필요가 있단 생각에 ‘비행청소년 상담’을 시작했으며, 이 사역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자원봉사단체로 출발한 각당복지재단이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사회복지법인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1991년 남편과 갑작스럽게 사별하게 되면서 큰 상실감을 겪게 된 김옥라 장로는 한동안 비탄에 잠겨 힘든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간구하자 뜻밖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

“엄청난 정신적 지지자였던 남편과 사별하자 오랫동안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몇날며칠을 기도하며 명상에 잠겼는데, 어느 날 심령 깊이 ‘죽음을 탁상 위에 올려놓고 공론에 부치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우리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할 사람들인데 그동안 죽음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죽음이 하나의 담론으로 등장했지만, 30년 전만 해도 죽음은 공론화하기에는 터부시되는 주제였다. 그런 상황에서 김옥라 장로는 남편 라익진 박사의 죽음을 계기로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공론화해야겠다고 결심했다.

1991년 4월 2일 윤보선 전 대통령의 사모인 공덕기 여사를 비롯해 가족과의 사별의 아픔을 겪은 이들 8명과 함께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해 6월 13일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창립기념 강연회를 열었는데 900석의 강연장이 꽉 차고 남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했다.

“당시 연세대 정문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때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어요. 겉으로는 죽음에 대해 터부시한다 해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배우고 싶어 한단 사실을 말이죠. 이후에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후 사회복지법인 각당복지재단으로 이름을 바꾸어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재단의 이름은 김옥라 장로의 남편인 라익진 박사의 호 ‘각당’에서 따왔다. 산하에는 한국자원봉사능력연구회, 삶과죽음을연구하는회, 호스피스연구회 세 단체를 두었다. 김옥라 장로는 국내 종교지도자들과 외국 호스피스 연구가들의 자문과 그들의 저서를 통해 ‘삶과 죽음’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국을 돌며 강연에 나섰다. ‘죽음을 준비하고 묵상할 때 더욱 삶이 풍요로워지고, 아름다워진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 세기를 넘게 살아오며 죽음의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도 깊은 고민과 연구를 해온 그였기에,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이 더욱 궁금했다. “죽음에 대해 종교지도자들의 자문을 받았는데, 죽음은 ‘하나의 관문’을 넘는 것이라고 한 김수환 추기경의 말이 가슴 깊이 와닿았습니다. 그는 이 관문을 넘으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저는 세상을 떠난 후에 하나님이 예비해주신 곳으로 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크리스천 중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고 고민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에게는 ‘죽음 이후에 신앙’에 대한 고민을 통해 답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교인들이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가더라도 갈 곳에 대한 준비가 되면 마음 놓고 떠날 수 있습니다. 죽음도 마찬가지예요.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더욱 많이 설교를 해야 합니다.”

한 세기를 살아가며 전쟁으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기도 했고 8.15 해방 후에도 5·16, 4·19 등의 역사적 격변기를 온 삶으로 겪어냈다. 겉으로는 정정해보이지만, 80세가 넘어 암으로 인해 신장 하나를 떼어내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숨 쉬며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큰 은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의 고비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주셔서 살게 해준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이고 감사입니다.”

100세가 넘었다는 것은 그만큼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에 평온함이 느껴진다. 그에게 ‘죽음’에 대한 배움은 스스로를 치유해나가는 과정이며, 죽음을 준비하는 삶은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그는 새로운 경험을 쌓는 일과 책을 통해 지식을 축적해나가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죽음 이후에도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곳으로 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죽더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죽음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하라 기자  jhara@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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