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무서운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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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무서운 환호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9.04.1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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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불합치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모두 승리의 외침을 외쳐 주십시오.”

4월 11일, 낙태죄 존치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예정된 날이었다. 헌법재판소 앞에는 결과를 기다리는 찬성과 반대 양측 시민단체들로 빼곡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결과가 발표됐다. 7대 2로 헌법불합치, 사실상 낙태죄가 위헌이라 선언한 것과 다름없었다.

소식은 금세 재판소 밖 시민단체들에게도 전해졌다. ‘낙태죄는 위헌이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낙태죄 폐지를 외치던 시민단체들은 헌법불합치 결정을 듣자 환호성을 내질렀다. 몇몇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내 이들은 함박웃음을 짓고는 “불합치”를 외치며 즐겁게 박수를 쳤다.

이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는 내내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했다. 자기 의사도 표현치 못하는 누군가의 생명을 마음대로 박탈해도 좋다는 결정에 또 다른 누군가는 환희에 가득 차 소리를 질렀다. 위화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자기 자식을 죽일 권리를 얻었음에 기뻐하는 그 환호소리가 무서웠다.

낙태죄 폐지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이들은 주로 진보단체와 여성단체였다. 기독교계 역시 대부분 진보 성향으로 평가되던 이들이 낙태죄 폐지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들은 지금껏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자부해왔다. 낙태죄 폐지에 반대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이들이, 아직 자신의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세상 누구보다 여리고 약한 존재의 생명을 무참히 짓밟은 것은 아닌가.

원치 않는 임신으로 겪게 될 예상치 못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여성들의 심경을 외면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과 남성이 함께 지고 국가와 사회가 도와야 마땅하다. 하지만 아직 사회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생명을 죽이는 것이 해결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은 인간의 자유를 생명의 존엄보다 앞세울 지라도 교회는 그 가치를 잃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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