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불신이 망국의 원인, 농담으로도 거짓을 말라”

그들이 꿈꾸었던 조국, 우리가 꿈꾸는 대한민국(6) - 정직에 목숨 건 도산 안창호 한현구 기자l승인2019.04.10 14:18:50l수정2019.04.12 11:13l14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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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대부 안창호 선생, 정직에 목숨 걸었던 크리스천

세계 투명성 지수 56위…오늘날도 여전히 ‘정직’이 숙제

 

▲ 도산 안창호.

“아아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내 평생에 죽어도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리라.”

독립운동의 대부 도산 안창호 선생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한반도와 미국, 만주 일대를 넘나들며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발이 닳도록 뛰었다. 비밀결사 독립운동단체 신민회와 흥사단을 조직했으며 대성학교를 세워 민족의 실력을 기르는 데도 투신했고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선 초대 내무총장으로 일했다. 하지만 반드시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조국의 광복을 미처 눈에 담지 못하고 1938년 59세의 고된 인생을 마쳤다.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도산 선생은 무엇보다 ‘정직’을 제일의 신념으로 삼았다. ‘내 나라를 죽인 원수’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거짓말과 거짓행실이 우리 민족이 망국의 수치를 겪게 한 근본적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안창호 선생이 그토록 꿈꿨던 독립을 이루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한 대한민국이지만 거짓과 부정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일생을 거짓 없고 자유로운 나라를 이루기 위해 불살랐던 그의 삶을 다시 조명하며 정직한 대한민국을 소망해 본다.

 

학교 입학보다 정직이 더 중요

도산 안창호 선생이 25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온갖 고생을 해가며 도착한 샌프란시스코에서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중학교 과정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벽에 부딪혔다. 샌프란시스코 일대의 중학교는 20세가 넘으면 입학할 수 없는 나이제한 규정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안창호 선생을 도왔던 선교사는 “미국인들은 동양인의 얼굴을 보고 나이를 짐작하지 못하니 면접할 때 19세라 답하면 된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도산은 면접자리에서 곧이곧대로 25세라 답했고 입학은 거부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선교사는 왜 충고를 듣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때 청년 안창호의 말에서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의 대답은 “내가 미국에 온 것은 서구의 교육정신과 제도를 배워 조국에서 바른 교육으로 나라를 세우고자 함인데 어찌 거짓말로 학교에 들어가겠는가. 내게는 거짓말로 학교에 입학하는 것보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선생은 정직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던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다. 그는 우리 민족의 잘못된 습성을 ‘거짓말’과 ‘거짓행실’, 즉 정직하지 못함이라 잘라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임기응변으로 거짓말을 해 목표를 이루는 사람을 영리한 사람이라 평가했지만 도산은 오히려 큰 잘못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만민공동회, 독립협회 등 독립운동을 위해 시작됐던 여러 결사조직들이 3년 이상 지탱하지 못한 것도 횡행한 거짓으로 서로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 안창호 선생이 평양에 세웠던 대성학교의 모습. 그는 학교를 통해 정직이 몸에 밴 민족의 지도자를 양성하고자 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도산이 고국에 돌아와 평양에 세운 대성학교의 교육목표 역시 ‘정직’이었다. 그는 늘 학생들에게 “생도의 가장 큰 죄는 거짓말과 속이는 일이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고 강조했다. “농담으로라도 거짓을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는 그의 말은 선생이 얼마나 정직을 중하게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크리스천으로서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던 도산은 독립운동으로 체포돼 일본 형사 앞에 섰을 때도 당당했다. 활동 목적이 무엇인지 묻는 일본 형사의 질문에 안창호 선생은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먹었고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잤다. 대한의 독립은 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나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답했다. 그리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의 독립을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대한은 반드시 독립할 것”이라고 확언했다.

한 치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취조에 응하는 그의 태도에 일본 형사도 당황하며 “그게 그대의 본심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선생은 “그렇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진심을 정직하게 말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부러질지언정 결코 굽히지 않고 일생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았던 인물이었다.

 

복음의 증인이라면 정직해야

다소 뻣뻣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정직을 강조했던 안창호 선생의 신념은 오늘날에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가 망국의 원인으로 지목했던 거짓과 불신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를 갉아 먹는 암 덩어리로 산재해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그토록 이겨내고자 했던 일본은 지금 세계 투명성 지수에서 20위를 기록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56위로 한참을 뒤쳐져있다. 만약 도산이 이 모습을 바라본다면 통탄해 마지않을 일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자문위원장 손봉호 교수는 “도산 안창호의 판단은 정확했다. 거짓과 불신이 과거 우리나라를 무너뜨렸고 지금도 우리 사회와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애국은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정직하고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 바로 애국”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또 “기독교인은 복음의 증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증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 그것은 정직한 것이다. 정직하지 않은 증인의 증언은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며 “복음을 전하는 크리스천들에게 정직은 기본이다. 크리스천은 정직으로 우리 사회를 물들여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교수) 역시 “안창호 선생은 독립운동가 중 거의 유일하게 스캔들이 없었으며 공사를 불문하고 정직을 몸소 실천해 탐욕과 부패로부터 자유로웠다”고 평가하면서 “도산의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직과 절제다. 진실된 소통이 필요한 이 시대에 우리는 도산의 리더십을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현구 기자  hhg@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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