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엔 꽃구경도 멀리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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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엔 꽃구경도 멀리해야 하나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9.04.08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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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봅시다-올바른 사순절 지키기

은혜 채우는 시간으로 개념 세워야

창밖엔 봄이 성큼 찾아왔지만 계절의 변화와 관계없이 주말엔 늘 피곤하다. 주중의 피로가 쌓여있기 때문에 소파 위에서 뒹굴 거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게 솔직한 심경이다.

그런데 아내가 꽃구경을 가자고 한다. “여의도엔 벚꽃이 만개했다더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주말에 아이와 함께 꽃놀이를 가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핑곗거리를 한참 생각하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언제나 피할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응수했다. “여보 사순절에 그렇게 꽃구경이나 다니면서 일신의 기쁨을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아내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실소를 터트리며 사순절이라고 꽃구경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더군다나 지금이 사순절이라는 사실도 잘 몰랐다는 것.

기독교 언론에 종사하는 터라 언제가 재의 수요일인지, 고난주간은 언제부터인지, 부활주일은 언제인지를 민감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관련해서 기사도 많이 써온 만큼 남들도 나만큼 사순절이나 여타 기독교 절기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곤 한다.

이를 계기로 사순절에 대해 돌이켜봤다. 모태신앙으로 자라오면서 사순절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아온 건 본인도 마찬가지다. 교계 기자가 되기 전까지는 나도 아내처럼 ‘사순절’은 삶에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자칭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란 한 사람’으로서 아내는 나의 교묘한 ‘사순절 타령’에 철퇴를 가했다. “마음에도 없는 고행을 자처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냐”며 “오히려 무리하게 지키자고 하는 것에 대해 반감이 든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 놓았다.

조금 공부를 해보니 개신교 내에서는 역사적으로 ‘사순절 무용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중세 가톨릭교회가 사순절을 너무 형식적이고 금욕적인 방법으로 강요해왔기 때문에 종교개혁가들은 이를 지키지 말 것을 가르치기도 했다.

또한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바로 하루 전에는 ‘탐식의 화요일’이라 하여 마음껏 육욕을 채우는 관습도 있었다고 하니 사순절의 그릇된 적용은 그때나 지금이나 경계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사순절만이 특별한 것처럼 여긴다면 이 때를 제외한 남은 날들은 흥청망청해도 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그럼에도 사순절은 여전히 의미가 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바르게 지키기만 한다면 이를 통해 신앙의 성숙과 일상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교회에서는 사순절에 스마트폰을 멀리하자는 운동이 주목을 받고 있다. 문제는 스마트폰이 사라진 곳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에 있다. ‘비우기’만을 강요하는 사순절 캠페인은 무책임할 수 있다. 사순절의 개념을 비우기 보다는 은혜를 채우는 시간으로 바르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남은 사순절엔 게으름보다 은혜를 채워보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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