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의 여왕 제인 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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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의 여왕 제인 그레이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9.04.0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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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 목사의 교회사 산책 영국의 종교개혁(8)

권력과 무관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때론 권력이란 무서운 칼날이 되어 들이 닥칩니다. ‘9일간의 여왕’ 또는 ‘런던탑의 비극’이라는 애절한 이야기로 전해지는 레디 제인. 제인은 헨리 7세의 증손녀로 아름답고 헬라어, 라틴어, 히브리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외국어에도 능통하며 영리하였습니다. 그녀의 비극은 파렴치한 시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는데, 헨리 8세에게서 왕위를 이어받은 에드워드 6세가 결핵으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안 에드워드의 자문관인 존 더들리는 그녀를 며느리로 맞아 왕위를 이어가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존 더들리는 에드워드 6세를 설득시켜 영국 왕위를 사촌인 레이디 제인 그레이에게 넘긴다는 유서를 쓰게 했습니다. 그리고 에드워드 6세가 15살의 어린 나이에 요절하자 노섬벌랜드 공작 존 더들리는 유서를 가지고 왕위계승권자 장녀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를 배제하고 자기 아들 길포드 더들리와 결혼시킨 제인 그레이를 왕위 계승자로 선언하였습니다.

헨리의 통치기간 중에 득세했던 프로테스탄트 세력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에드워드의 이복누이로서 정당한 왕위계승권자인 메리1세와 엘리자베스1세를 배제하고 제인 그레이를 옹립하였습니다. 

자신이 왕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기절했던 제인 그레이는 9일 만에 왕위에서 쫓겨나 대역죄로 재판을 받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재판결과는 당연하게도 사형.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왕이 되었다가, 반역자가 되어 사형수로 전락한 제인. 사형집행은 곧바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피의 숙청을 벌이고 있던 메리 1세 지만 동정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반란사건에 연루에 된 것이 드러나면서 집행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제인 그레이는 자신이 수감된 런던탑의 창을 통해 남편 길포드 더들리의 처형을 바라보며 이별을 고합니다. 비록 두 사람의 부부관계는 일말의 애정도 없이 오로지 정략에 의해 맺어졌을 뿐이지만 제인은 자신과 같은 운명을 함께한 남편에게 작은 연민을 느꼈습니다. 

이제 다음은 그녀의 차례입니다. 1554년 2월 12일, 그의 나이 열여덟의 일이었습니다. 검은 가운을 입고 한손에는 기도서를 들었습니다. 유모와 하녀가 함께 했으며 런던탑의 간수장이 사형장으로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제인은 순수 왕족의 혈통이었으므로 처형은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소수의 인원만이 참석한 채 진행되었습니다. 그녀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펙켄함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집행에 앞서 제인은 기도서를 펴고 시편 51편을 읽었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기도서 낭독이 끝난 후 검은 가운을 벗자 다음은 관례에 따라 형 집행인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며 눈을 가릴 수 있는 가리개를 주었습니다. 제인은 기꺼이 그를 용서했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올곧지만 어린 소녀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제인은 좀 전에 받은 가리개로 두 눈을 가렸습니다. 하지만 앞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목을 올려야 하는 참수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허공에 손을 저으며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자 참관인석에 있던 사람 중 한명이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손을 잡고 참수대의 위치를 알려주었습니다.

평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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