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언어와 사망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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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언어와 사망의 언어
  • 이영주 목사
  • 승인 2019.04.0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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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설교

| 민수기 14:1~10

언위심성(言爲心聲)이란 말이 있습니다. ‘말은 마음의 소리이다’ 사람이 지닌 고유의 향기는 사람의 말에서 품어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인품(人品)이 있듯이 언품(言 品)이 있습니다. 그런데 ‘品’이란 품질의 준말입니다. 수준이 나 등급을 의미하는 ‘품’ 한자 ‘品’자를 보십시오. 품의 구조가 흥미롭습니다. 입‘口’가 3개 모여 있지 않습니까? 즉 ‘말’이 쌓이고 쌓여서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위심성’(言爲心聲)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생명의 언어와 사망의 언어가 동시에 나옵니다. 먼저 사망의 언어를 보면 ‘통곡’ ‘원망’ “죽었거나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칼에 쓰러지게 하려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 사망의 언어를 하나님께서 다 들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은 씨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말은 씨가 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를 좋아 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입을 잘 놀리면 단 것을 실컷 먹고 입술을 잘못 놀리면 쓴 것을 들게 된다. 죽고 사는 것이 혀끝에 달렸으니 혀를 잘 놀려야 잘 먹을 수 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돈 안 들이고 힘 안 쓰고 큰 재주 없이 잘 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입으로 좋은 씨를 많이 심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한 말을 하나님이 다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늘 조심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자기가 말한 대로 응 답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도 매몰찬 말 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막말은 사망의 언어입니다. 좋은 말, 믿음의 말, 생명언어를 써야 합니다.

둘째, 말은 다른 사람에게 심은 대로 나에게 돌아옵니다. 왜 말을 조심해야 합니까?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심어서 내가 거두는 것입니다. 좋은 말을 심으면 좋은 것으로 축복의 말을 심으면 축복으로 생명의 말을 심으면 생명으로 사망의 말을 심으면 사망으로 저주의 말을 심으면 저주로 내게 돌아옵니다. 스텐리 존스 박사는 인도의 성자이며 선교사입니다. 80세에 뇌출혈로 쓰러져 미국 보스턴 병원에서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는 의사와 간호원들이 치료하려 들어올 때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소리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마다 존스 박사는 아멘으로 응답 했습니다. 또 병실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부탁했습니다. 그의 생명의 말은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6개 월만에 다시 걷게 되었고 건강을 완전히 회복해서 다시 인도로 가서 15년을 더 선교사역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의 언어는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내 병은 치료될지 어다.’ 생명의 언어로 외쳐보십시오. 분명히 생명의 언어에는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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