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단 한명이라도 ‘상한 심령’ 위로 받는다면 충분”

거리서 찬양으로 복음 전하는 수원 이음교회 정찬석 목사 김수연 기자l승인2019.03.14 11:14:12l수정2019.03.14 12:19l1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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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친구야! 기쁨이 넘치는 하루 보내렴!” 새 학기를 맞아 설렘 가득한 등굣길에 격려의 인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수원 이음교회 정찬석 목사(42세)는 지난 6일 희뿌연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은 날도 어김없이 학교 앞으로 나왔다. 날씨가 무슨 대수냐는 듯 마스크조차 쓰지 않은 그는 삼각대에 휴대폰을 꽂고 옆에 서서 기타를 치며 찬양하기 시작했다. 정 목사가 중간 중간 하이파이브를 건네면 대부분 아이들은 웃는 얼굴로 신나게 받아치고 지나간다. 

비가 내리고 눈이 와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 목사가 자리를 지킨 지 꼬박 2년째다. 학생들이 없는 방학 땐 출근길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가 날마다 활기차게 복음을 전하는 현장은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을 통해서도 생생히 전달된다. 덕분에 정 목사를 알아보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제법 생겨났다. 그러나 대단할 것 하나 없다며 그저 세상에 하나님을 외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정 목사다. 과연 그에게 주어진 소명은 무엇이었을까.

▲ 동네서 아이들에게 ‘좋은 아저씨’로 통하는 수원 이음교회 정찬석 목사.

부르심에 순종하는 믿음
모태 신앙인이었던 정 목사는 학창시절 교회서 살다시피 했다. 오죽하면 교역자들이 “그만 좀 오라”고 말렸단다. 그런 그는 바람인지 숙명인지 모르겠지만 크면 당연히 목회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고난 목소리와 재능을 살려 정 목사는 부산 경성대학교 성악과로 진학했다. 실력을 눈여겨본 주위의 부추김으로 한 학기 만에 서울 소재 대학들에 다시 지원했지만 결과는 전부 낙방이었다.

그때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왔다. “반드시 성악가가 돼야 찬양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노래를 잘 불러야 하나님께서 더 큰 영광을 받으시는 게 아니니까요. 찬양은 주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고백으로써 저 역시 좋으신 하나님을 드높이고 싶었을 뿐입니다.” 결국 그는 부르심에 순종해 ‘주의 종’을 결단하고 신학대로 노선을 바꿨다. 모친이 국제시장에서 양말 장사로 어렵게 생계를 꾸렸기에 매일 4시간씩 걸어서 통학할 때도 그는 목청껏 씩씩하게 찬양했다.

정 목사가 목회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때는 28살 무렵이었다. 이후 12년간 부교역자로서 다양한 사역을 경험한 그는 동시에 가난과도 맞섰다. 아내와 딸 둘을 둔 가장으로서 막노동부터 사진작가·대리운전·야식배달·영업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바리스타·지게차운전·전기기사 등 각종 자격증이 이를 방증한다. “이 시간들로 하여금 성도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일상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을 감내하는지를 알게 됐죠.”

그러나 정 목사는 이런 ‘밥벌이’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들어선 광야에서 먹고사는 문제는 전적으로 주님께 맡기기로 했다. “오랜 부교역자 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넌 어떤 목사가 될래?’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때 ‘가진 것 다 내려놓고 거리로 나가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자’는 열망이 솟았어요. 그동안 스카우트를 요청한 대형교회들도 있었지만 다 거절했습니다. 힘듦을 모르고선 어떻게 성도들을 관통하는 올바른 말씀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실시간 방송되는 ‘등굣길 찬양’
마침내 2017년 7월 11일 나이 40줄에 목사안수를 받은 그는 곧바로 다음날부터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다. 기타 하나 짊어지고 ‘교회 밖’으로 향한 것. 낯가림이 심한 그 역시 연약한 인간인지라 첫날은 인파를 피해 한적한 공원을 택했다. 그리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입술을 뗐다. 얼마쯤 지났을까 맞은편 벤치에 앉아 찬양을 따라하던 60대 할머니가 대성통곡을 하며 정 목사에게로 다가왔다.

“할머니께서 제 손을 잡으면서 ‘신앙생활 35년 만에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련을 겪고 있었는데 오늘 목사님의 찬양에 큰 위로를 받았다’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하더라고요. 그날 저는 교회의 부흥이나 전도 등 어떤 목적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싶어서 공원에 간 것인데 그럼에도 역사가 이뤄지는 걸 보면서 저를 향한 주님의 뜻을 확신했습니다. 진정한 ‘영혼구원’이 뭔지 알게 되니 제 수줍음 따위는 저절로 극복되더라고요.”

그렇다면 그가 특별히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정 목사의 대답은 단순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잖아요.” 대신 그는 청소년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유튜브’를 적극 활용했다. 여기엔 성도가 10명이 채 안 되는 개척교회 목사로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싶었던 간절함도 더해졌다.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영상을 보고 한 명이라도 더 복음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항상 정해진 시간, 같은 아이들을 만나다보니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당연했다. 정 목사는 누가 새 신발을 샀는지 등 사소한 변화들을 알아차렸다. 그 다음엔 명찰에 쓰인 이름을 외우고 불러줬다. 그러자 굳은 얼굴로 무관심했던 아이들도 점차 마음 문을 열었다. 이들은 유튜브에서 봤다며 먼저 달려와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카메라에 대고 한껏 흥을 발산하기도 한다. “아저씨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사랑해요!”라며 환호하는 아이들이라곤 왜 없을까.

이렇게 친해진 아이들은 2년간 무상으로 기탁 받은 정 목사의 카페 겸 교회를 아지트 삼아 몰려든다. 십시일반 도움의 손길로 채워진 피아노와 책들 덕분에 주로 초·중학생들이 단골이다. 그는 과자·컵라면 등 간식을 상시 구비해놓고 토요일엔 붕어빵도 구워 나눠준다. 그렇게 매일 열댓 명의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정 목사는 뜻밖에 어려운 가정형편 혹은 학업 등으로 신음하는 아이들의 아픔을 절감했다. 그리고 게 중에 20여명은 기적처럼 예수님을 만났다.

단 한명의 상한심령을 위해서
그러나 씨를 뿌려 기쁨으로 단을 거두기까진 정 목사의 남모를 고충이 컸다. 지금이야 동네서 ‘좋은 아저씨’로 통해 교감선생님이 새로 부임한 교사들을 그에게 직접 소개시켜줄 정도지만, 한때는 학부모들이 해코지를 하거나 학교 측의 신고를 당하기도 일쑤였다. 어디 그 뿐인가. 종종 SNS에 달린 악플들은 정 목사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하루는 아침마다 내리쬐는 뙤약볕에 노안이 심해져 선글라스를 썼더니 ‘튀고 싶어 안달’이란 댓글이 남겨졌다.

“가끔은 동료 목회자들마저도 제 사역을 이해 못 할 때가 많아요. 시간낭비라고 혀를 끌끌 차거나 유치한 쇼하지 말라며 조롱하는 이들도 있죠. 그런데 남들에겐 장난처럼 보일지 몰라도 저는 제 ‘전부’를 걸고 하는 겁니다. 찬양으로 지친 다음세대에게 힘을 주고픈 소원, 이단이 활개 치는 미디어 속에 진짜 복음을 심고 싶은 제 갈급함을 하나님 외에 누가 다 알고 평가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이런 제 진심을 읽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이가 더 많기에 힘을 냅니다.”

현재 그는 목회에 방해되지 않는 수준에서 간간히 아르바이트만 할뿐 100만원 남짓한 아내의 수입과 후원금으로 사역을 꾸려가고 있다. 그럼에도 늘 공짜로 퍼주기만 하는 사역에 경제적 어려움은 말해 뭐할까. “불안할지라도 천국에 소망을 두고 가는 겁니다. 이 땅에 부귀영화가 없대도, 제 사역을 아무도 몰라주고 평생을 컵라면에 물만 붓다 간대도 괜찮아요. 성도를 못 채우고 교회 문을 닫을지언정 계산하지 않고 그냥 하나님 사랑 전하는 게 제 소임이니까요.”

이런 그의 믿음에 놀라운 간증도 넘쳐났다. 한번은 수원역에서 찬양할 때였다. 번화가지만 무관심 속에 한 시간 찬양을 끝낸 정 목사는 그날따라 무척이나 지쳤다. 노랫말이 허공에 흩어진 것 같은 허탈감을 느끼고 돌아서려 할 때 전단지를 돌리던 한 장애인이 정 목사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잠실서 수원까지 돈을 벌려고 왔다는 그는 정 목사의 찬양이 꼭 자신을 위한 것 같았다며 감사하다고 고개 숙였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초코바 하나를 꺼내 손에 쥐어줬다.

“순간 왈칵 눈물이 났어요. 돈 없는 사람에겐 ‘초코바’ 하나도 얼마나 귀한지 잘 알거든요. 더불어 하나님께서 ‘모두가 네 찬양을 외면하는 것 같아도 누군가는 듣고 있단다. 그게 비록 단 한명일지라도 그 상한심령을 위해 계속 찬양을 불러줄 수 없겠니?’라고 속삭이시는 것 같았습니다.” 정 목사는 그렇게 오늘도 거리로 향한다. “제가 언제 갑자기 하늘나라를 간대도 남은 이들에게 ‘예수님 전하던 아저씨’로 기억된다면 그걸로 저는 기쁩니다. 저는 복음의 씨앗을 심을 뿐 열매를 맺는 건 오직 하나님이시니까요.”

▲ 상가 내 작은 카페를 빌려 만든 수원 이음교회. 정 목사와 친해진 아이들은 이곳을 아지트 삼아 몰려든다.

김수연 기자  ksy@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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