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태극기는 모두의 것
상태바
[기자수첩]태극기는 모두의 것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9.03.04 17: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제부터였을까. 태극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극우 보수’를 떠오르게 된 것은. 지난 1일 100주년을 맞은 3.1절은 간만에 태극기가 본래의 상징을 되찾은 날이었다.

3.1절 오전 서울광장에서 을지로입구역까지 1만여 개의 의자가 놓였다. 한눈에 담기 어려울정도로 길게 늘어선 의자를 보며 ‘과연 이 자리를 다 채울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우려는 단박에 깨졌다. 3.1운동 100년 한국교회 기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각지에서 온 한국교회 신도들이 차츰차츰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고 마지막 몇 줄을 제외하고는 빽빽하게 가득 들어찼다.

‘심각’ 단계의 미세먼지와 아직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세대를 초월한 1만 여 참석자들은 마스크와 머플러로 무장한 채 힘차게 태극기를 흔들었다. ‘태극기’를 흔들었지만 정치적인 메시지는 찾기 힘들었다. 대신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3.1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통성기도가 있었을 뿐이다. ‘태극기=노인’이라는 공식도 보기 좋게 깨졌다. CCC에서 온 400여명의 대학생뿐 아니라 개인자격으로 온 2030 청년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취재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 한 목사님을 만났다. 평소 SNS 친구로 소식을 주고받던 젊은 목사님이었다. 목사님은 “태극기 부대가 아니라 예배하러 청년들과 함께 왔다”며 “태극기부대가 아니라는 해명이 필요한 현실이 다소 슬프지만 오늘만은 태극기가 자랑스럽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한국교회 기념대회 취재를 마치고 광장으로 향했다. 멀리 찬양 소리가 들려 따라가 보니 군복을 입은 어르신들이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기를 흔들고 있었다. 이들은 “문재인을 끌어내자” “박근혜 대통령님 석방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소리 높여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태극기와 찬송가, 극우적인 메시지가 얽혀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흐뭇했던 기분이 순간 짜게 식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