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의 아버지 윌리엄 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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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성경의 아버지 윌리엄 틴들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9.02.1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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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 목사의 교회사 산책 - 영국의 종교개혁(2)

영국 국내에 종교개혁 사상이 점점 퍼져 감에 따라 정부 당국은 종교개혁 사상가들을 색출하고 박해하기 시작하여 대륙으로 피난 간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옥스포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한 윌리엄 틴들(1494?~1536)은 ‘영어성경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영어성경은 존 위클리프가 먼저 번역을 했지만 위클리프는 라틴역 불가타에서 영어로 번역을 했지만 틴들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에서 직접 번역을 했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틴들은 석사학위를 받고 가톨릭 사제가 되어 신학을 배울 수 있었지만 성경을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언어에 재능이 있어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독일어, 라틴어, 스페인어 등 6개국 외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했던 틴들은 성경을 원어로 읽고 싶었습니다. 틴들은 석사학위를 받고 사제가 된 그해인 1515년에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있는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옮겨 에라스무스가 번역한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대중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런던을 떠나 독일 함부르크로 가서 루터의 도움을 받아 신약성서의 영어 번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서와 루터의 독일어 신약성서를 참고하였고 구약의 모세오경도 번역하였습니다. 독일에 온지 불과 1년만인 1525년 마침내 신약성경 번역을 완성했고 이듬해 그의 영어판 신약성서가 독일 보름스에서 인쇄되어 출판되었습니다. 

틴들이 번역한 신약성서는 무역회사의 한 수입상품으로 가장하여 영국으로 들여왔습니다. 가톨릭 성직자들은 그를 암살까지 하려고 했지만 워낙 비밀리에 인쇄하고 배포하였기 때문에 틴들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맡겨진 사명이 끝날 때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습니다. 윌리엄 틴들은 계획적으로 접근한 헨리 필립스라는 사람의 배신으로 붙들려 브뤼셀 근처 빌보르데 성에 500여일 동안 어두운 곳에서 춥고 배고픈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독방에서 나는 정말 머리가 쓰릴 정도로 춥습니다 … 내 두터운 코트가 다 낡아가고 내 셔츠도 낡았습니다 … 부탁이 있습니다. 저녁에 작은 호롱불이라도 이곳에 있으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어두운 곳에 홀로 있으니 더욱 힘들고 피곤합니다. 이 모든 것들 가운데 제가 바라고 정말 부탁하는 것은 저에게 친절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사람을 급히 보내셔서 제가 사용하는 히브리어 성경, 히브리어 문법, 그리고 히브리어 사전을 가지고 오셨으면 합니다 그 이유는 공부를 하다보면 시간 지나가는 것을 잊을 것 같아서입니다.”

틴들의 검거 소식을 들은 켄터베리의 대감독 크랜머는 외교수단을 통해 석방시키려 하였고 영국 상인들도 탄원서를 내어 석방시키려 했으나 허사였습니다. 틴들은 성직을 박탈당하고 사형 평결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번역한 성경은 이제까지 가장 유명한 영어번역본의 모태가 되는 구실을 하지요.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을 번역한 번역진은 1611년 틴들의 성경을 폭넓게 참조하여 출판했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의 90퍼센트는 틴들의 성경에서 옮긴 것입니다.

평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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