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화둥둥 내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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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화둥둥 내 사랑아!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9.02.1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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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호세아9:10>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지난 주, 후배와 있는 커피집에서 우연히 그 후배의 남자 조카 A를 만났다. 그런데 영 얼굴빛이 편하지 않았다. 후배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A가 답했다. (내가 A의 말을 순화시켜서 표현하는 것임.) “소개팅했는데, 완전 실망!” “왜?” “얼굴은 작은 편인데 머리가 너무 커!” “이그! 아직도 외모 타령?” “그래도 머리가 너무 큰 걸 어떡해? 보는 순간 아웃! 밥만 먹고 왔지. 친구 둘이랑 같이 갔는데 내 파트너만 머리가 큰 거야. 엄청!” A는 두 팔을 위로 올려 둥글게 만들어보였다.  

A가 간 다음 나는 물었다. “얼굴은 작은데 머리가 크다는 게 뭐지?” 후배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요즘 애들은 얼굴 크기랑 머리 크기까지 따져요.” 하면서 새로운 학설을 전해주는 듯 열강을 했지만 나는 지금도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알게 된 것은 요즘은 대화 없이도 외모만 미친 듯이(?) 살피고서 얼마든지 좋아하고 사귀며, 사랑하고 결혼할 수 있는 신종족이라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는 스마트폰 속에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은  대부분 ‘사기 수준’이라는 것을 알기에 소개팅은 확인작업? 그래서 노련한 형사처럼 상대방의 외모를 자기만의 쌍안경(두 눈)과 잣대와 기호, 그동안의 경험, 연예인과의 비교 등등을 하고 빛의 속도로 계산을 한 다음, 밥만 먹고 갈지, 먼저 꼬리를 내릴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런 식”으로 사귀려고 하신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즉, 우리 각자의 삶의 외모를 매의 눈빛으로 살피실 때, 하나님은 혀를 차거나 한숨을 내쉬고, 픽 하고 비웃거나 홱 고개를 돌리시는 게 당연할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쫓기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는 작은 습관을 고치는 것이 몇 년 째 실패, 간식 덜 먹어서 건강 지키고 그 돈 모아서 매월 선교헌금 내겠다는 약속은 수 없이 깨뜨리고, 사람들에게 말 함부로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도 결코 어떤 판단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날마다 새로 써야 하며, SNS, 게임, 드라마, 영화, 부끄러운 동영상, 과도한 유튜브 시청, 듣고나면 교회와 성경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 팟 캐스트 청취, 소확행을 명목으로 내세운 온갖 쇼핑 등등을 개편작업하여 시간을 생명처럼 쓰겠다고 맹세한 것도 하루를 넘기기 어렵고, 교회에서 어느 자리이든 일꾼이 되겠다는 마음은 1월 첫 주에 이미 파산났고..

이렇게 신앙의 현장은 물론 일상의 모든 곳에서 -시간 관리, 건강, 청소, 관계, 물질관리, 마음 지키기, 말과 시선을 거룩하게 지키기, 그밖에 사소한 갖가지 일들- 허당이요, 변덕쟁이, 거짓말투성이, 약속을 무서워하지 않는 등 무감각하게 사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소개팅 자리에 나와서 보신다면? 하나님은 ‘주머니는 작아도 욕심은 엄청 크네! 그런데 이상하다. 그 욕심을 채우려고 피땀은 별로 흘리지 않네! 혹시 내 덕 보려고 소개팅 자리에 나온 거 아니야? 어이구, 안되겠다’ 하고 후다닥 되돌아가실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다. 막강한 왕조를 이어가는 강대국도 아닌 한 때 노예였고, 늘 침략을 당하는 별 볼일 없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기억은 놀라울 정도로 사랑이 넘치신다. ‘광야에서 만난 포도나무’라니! 얼마나 반가울까! 사막과 광야에서의 포도는 생수요, 희망의 근거이다. 그 초라한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하나님은 보는 순간, 사랑의 환호성을 지르셨다. ‘나의 포도나무다! 너를 보니 내가 살 것 같구나! 이제 걱정 마. 내가 너를 잘 키워주고 지켜줄게! 너는 다시는 말라 죽지 않을 거야!’

이뿐만이 아니다.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했다.’ 고 하신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른 무화과나무는 늦은 시기에 맺히는 것보다 훨씬 맛있고 풍성해서 높은 값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 열매도 없는 무화과를 보고 마치 눈앞에 주렁주렁 열매가 달린 듯이 기뻐하시고 칭찬해주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아(애야!)! 힘들지? 하지만 내가 너를 알고, 네가 나를 만났으니 너는 날마다 일어나서 살아내기만 해. 그러면 이른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거야. 내가 네 울타리가 되어주고, 네 가지를 쳐줄게. 조금만, 조금만 더 견디면 너는 모두가 감탄하는 무화과나무가 될 거야. 내 눈에는 그게 다 보이거든!’-안타깝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 기쁨을 무참하게 내던지는 악행을 저지른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가 크든 얼굴이 크든 그런 것은 따지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겨울나무같이 초라하고 마른 우리를 보는 순간 ‘어화둥둥 내 사랑아!’하시며 가지가 휘어질 듯 탐스런 열매를 맺은 포도나무처럼, 무화과 천지가 된 양 기뻐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오늘을! 하나님의 감격을 무너뜨릴 자격이 우리에게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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