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진짜 일본이 우리나라를 저렇게 괴롭혔다고요?”

[르포] 귀향길에 만난 100년전 3.1운동 역사 이인창 기자l승인2019.02.11 22:14:45l수정2019.02.12 17:43l1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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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고속도로 따라 가족과 떠난 3.1 만세시위 현장
제암리교회, 구암교회에서 직접 본 신앙인의 나라사랑

“석현아! 유현아!, 3.1운동이 언제 일어났는지 알고 있어?”

이 질문에 우리집 두 아들은 언젠가 6.25전쟁이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 처음 질문했을 때와 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1923년이요” 첫째는 얼추 비슷하게 대는 듯 했지만, 둘째는 “1984년?”이라며 얼토당토 않는 대답을 내놓는다. 

기자가 어릴 적 그 나이 땐 6.25와 3.1운동, 8.15해방이 있었던 해는 분명 기억하고 있었던 듯싶다. 하지만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올해 이미 3.1운동의 역사와 한국교회의 역할을 더듬어가는 기사를 쓰고 있으면서 정작 내 집 아이들은 방치해두는 듯해 미안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3.1운동의 역사를 아주 생생하게 알려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동했다. 본격적인 설 연휴보다 하루 먼저 휴가를 내고 지난 1일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가며 3.1운동의 역사와 기독교 유적지를 찾아가기로 한 것. 미리 계획했던 서대문형무소는 다음으로 미루고, 아점을 든든히 먹고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관림을 마무리하며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일본아 사과해라 빨랑~”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출발한 덕에 도로는 비교적 한가했다. 경기도 부천에서 출발해 처음으로 다다른 곳은 경기도 화성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 발안IC에서 5분이면 당도하는 거리이다. 2년 전 ‘한국교회연합’과 기독교 유적지를 동행취재하면서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오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이제야 실천한 셈이다. 넉넉히 한 시간이면 올 거리 인데도 말이다. 

출발 전 두 아이에게는 보훈청에서 제작한 3.1운동 해설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하도록 해 두었다. 둘째는 집중하기 어려워했지만, 인기강사 설민석 선생의 박진감 있는 설명에 첫째는 빠져들었다. 도움이 되었는지 실제 관람할 때는 깊은 관심을 보였다. 

명절 전날이어서인지 기념관 내 방문객은 우리뿐이었다. 입구에 앉은 두 분의 해설사도 누가 오나 싶다가 꼬맹이들을 보고 이내 미소로 반겨주었다(5살 막내아들은 아내와 별도의 시간을 보냈다).

10여분 동안 화성의 만세운동과 제암리 사건을 소개하는 영상을 시청하고 전시실로 향했다. 3면으로 된 대형화면으로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에게 더 현실감 있게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듯 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당시 화성에서는 3월말 만세시위가 본격화됐다. 주재소를 습격해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격렬했다. 만세운동을 진압하던 일본군은 그 보복으로 4월 15일 민간인 29명을 제암리교회에 감금하고 불을 질러 학살했다. 

일제 만행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지 두 아들은 이런저런 질문들을 쏟아냈다. 너무 많은 설명보다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많을 것 같아 답은 간결하게 했다. 일제에 의해 묻힐 뻔했던 사건을 스코필드 선교사가 밝혔다는 설명도 부연해 주었다. 

추모 메시지를 적는 타일에 무엇을 적어보겠다고 먼저 나선다. 첫째는 작은 타일 한칸에는 “일본아 사과해라 빨랑~”, 다른 칸에는 “존경한다 2월 1일”을 적었다. 둘째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는 출구에서 제암리 순국선열 이름이 새겨진 스탬프를 찍기도 해보고 기념관 밖 기념비에서 묵념을 했다. 잠깐 동안이지만 아이들은 제법 비장한 표정이다. 카메라 뷰 파인더로 보이는 아이들 모습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진다. 

▲ 3.1운동 이후 한강 이남 최초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군산구암교회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쳐보았다.

한강이남 최초 3.1운동 군산구암교회
다시 여행을 위해 서해안고속도로에 올랐다. 서해대교 아래 행담도휴게소에서 맛있는 늦은 점심과 방송에서 유명해진 간식도 사먹었다.  

2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군산. 애초에는 서천IC를 나와 강경을 같이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다만 강경은 고속도로에서 나가면 꽤나 멀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군산 IC에서 나와 10여분 달리면 도착하는 군산구암교회였다. 구암교회를 선택한 것은 한강 이남 최초의 3.1운동 발생지라는 점 때문이다. 

군산에서 만세운동은 3월 5일 일어났다. 서울과 불과 닷새 차이이다. 이토록 빠를 수 있었던 것은 구암교회 출신의 세브란스 의전학생 김병수가 민족대표 33인 이갑성 선생에게서 독립선언서 2백여 매를 받아 박연세, 이두열 장로에게 전달했기에 가능했다. 사전에 발각돼 주모자들을 잡혀갔지만 군산의 선열들은 아랑곳 않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펼쳤다. 만세는 5월까지 계속돼 3만1,500여명이 참여하고 53명이 피살될 정도로 강렬했다. 1919년 군산은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228명이나 더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대단함을 느끼게 된다.

지금의 구암교회는 현대식 건물이었지만, 교회 뒤편에는 지난해 문을 연 3.1운동 기념관과 기념비, 공원이 잘 조성돼 있었다. 3.1운동기념관은 옛 영명학교 건물을 재현한 것이다. 군산선교스테이션을 세운 전킨슨 선교사가 세운 학교로, 이 학교 학생들이 3.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 만큼 피해도 컸다. 도착 시간이 늦어져 기념관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높은 언덕에 조성된 기념비에는 상세한 역사가 기록돼 있었다. 

썰물 때라 온통 짙은 뻘밭이 된 군산 앞바다와 저녁 땅거미가 내리고 잔뜩 흐려져 있는 하늘 사이에서 미묘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의 막막함이 이런 것이었을까. 구암교회가 내려다보이는 큰 돌에는 ‘대한독립만세’가 새겨져 있다. 두 아들과 그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불러보았다. 기념관 앞 잔디밭에서는 막내가 엄마와 공놀이를 하고 있다. 군산을 나오기 전에 우리의 목적지, 전남 함평에 계시는 부모님께 선물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유명한 빵집에 들러서 갖가지 빵을 기분 좋게 사들고 나왔다. 다시 한 시간여 더 달려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주 간 상봉(?)이 이뤄졌다.

▲ 함평군 신광면에는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현장이 있다.

“나라사랑의 신앙유산을 기억하자”
사실 서해안고속도로의 종점은 목포이다. 군산이 일제 치하에서 전국 제1의 수출항으로 엄청난 수탈을 겪어야 했던 것처럼 목포도 그랬다. 세 번째 개항항구 목포는 전남서남부 복음화의 전초기지였다. 교회가 교육과 의료 등 근대화에 기여하면서 민족의식도 높아졌다. 

목포에서 3월 21일과 4월 8일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이들은 미션스쿨 정명여학교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이 시위를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목포양동교회 이경필 목사와 교인들이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설 명절이니만큼 우리 여정에서 목포는 다음 기회가 되었다.

대신 설 연휴 중 주일예배를 마치고 검색하면서 함평에 독특한 역사 시설이 있어 여동생 가족과 합류해 찾아갔다. 바로 3.1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아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서 만들어진 임시정부 청사를 그대로 재현한 곳이 함평군 신광면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었다. 

우리 가족이 딱 일 년전 상해여행을 간 적이 있어 아이들의 기억 속에도 남아 있는 장소이다. 임시정부 재무장을 지낸 일강 김철 선생의 생가터에 만들어진 곳. 명절이기 때문에 찾는 사람은 없었지만 우리만의 역사기행은 이곳에서 마무리했다. 

아내가 “아빠가 왜 너희들과 이번 여행을 하시려고 했는지 알겠니?”하고 물었을 때 큰 아들은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알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둘째는 “모르겠는데요”라며 장난했지만 생각하는 게 있는 것 같다. 막내에게는 두 형이 좋은 스승이 되어 줄 것이다. 흑백사진처럼 아련하지만 100년 전 3.1운동과 교회의 헌신을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라사랑이라는 벽돌 한 장을 가슴에 쌓는 기회였으면 하는 아빠 마음이다. 

이인창 기자  tackle21@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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