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신학’은 교회를 세우는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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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신학’은 교회를 세우는 신학
  • 이덕주 교수
  • 승인 2019.01.2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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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주 교수 감리교신학대학교 은퇴교수

한국교회사를 공부하다보니 외국 신학자들로부터 “한국교회의 폭발적 성장과 부흥의 비결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부작용 및 문제는 없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압축 고도성장이 그 결과이자 후유증”이라고 대답한다. 

근현대 한국사회가 ‘압축 고도성장’의 경제부흥을 이룩했듯, 한국교회도 한 세기 조금 넘는 짧은 역사에 서구 기독교 2천년 역사를 압축 경험하였다. 사도시대 기독교회가 수난과 박해의 역사로 시작되었듯이 한국교회는 복음 선교가 시작되면서부터 극심한 수난과 박해를 체험하였고 일제강점기와 전쟁 시기에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박해를 견뎌낸 서방교회가 부흥과 성장, 선교의 역사를 일궈냈듯이 한국교회도 ‘선교 기적’이라 불릴 정도의 폭발적인 부흥과 성장을 이룩하였으며 오늘날 인구대비로 선교사를 가장 많이 보내는 선교국가가 되었다.

그 외에 종교 재판과 교회 분열, 정통과 이단의 역사,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 건축, 수도원과 사회구제, 십자군 같은 공세적 전도활동과 해외선교 등 서구 기독교 2천년 역사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건들을 한국교회는 120년동안 체험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아직 체험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종교개혁’(reformation)이다. 한국교회는 진정한 의미에서 ‘뿌리 채 뒤집혀’ 체질적으로 새롭게 된다는 의미에서 종교개혁을 아직 체험하지 못했다. 물론 그동안 한국교회 안에 종교개혁에 대한 설교나 강연, 책이나 논문이 없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많았다. 문제는 말과 주장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론이 아닌 행동으로, 주장이 아닌 실천으로, 형식적 집회가 아니라 영적 체험으로 전개되는 종교개혁 체험이 아직 없었다. 

오늘 한국교회의 성직매매 악습은 일부 대형교회의 ‘사유화’와 변칙적인 교회세습, ‘돈 봉투’로 얼룩진 교단장 선거, 천문학적인 은퇴목회자 사례비 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 외에 성직자의 윤리적 타락과 사치, 교인들의 도덕적 불감증, 교회 권력과 세속 권력과의 결탁, 과시적 성전 건축과 화려한 장식, 다른 문화와 종교에 대해 배타적 선교행태 등 중세교회의 폐해와 오류들을 한국교회가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모두가 무너지는 교회의 ‘말기 증상’들이다. 

그렇다고 무너지는 교회의 혼돈 상황을 바라보며 분노하고 실망만 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우리는 분노하고 질책하면서 동시에 세워질 교회에 대한 희망을 선포해야 한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그러했고 신약의 사도와 제자들이 그러했으며 기독교와 인류 역사에서 교회가 타락하고 몰락할 때마나 나타난 종교개혁자들이 그러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다. 기독교 역사에 등장한 개혁자들의 신학사상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십자가 은총’이다.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로마가톨릭교회를 세우면서 내걸었던 ‘하나님의 도성’ 신학이 어거스틴의 ‘십자가 은총’에서 출발하였음은 물론이고 중세를 끝장 낸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의 신학도 십자가 구속의 은총을 재발견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처럼 교회가 타락하고 몰락할 때마다 ‘십자가’가 재등장하였다. 

교회의 근거이자 존재 이유인 ‘십자가’를 재발견한 개혁자들의 메시지와 실천을 통해 교회는 다시 세워지는 역사를 반복하였다. 부자와 권력자를 위해 물질적 풍요와 성공을 빌어주는 ‘번영의 신학’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신학이라면 자발적 청빈과 순결, 고난과 희생을 실천하는 ‘십자가 신학’은 교회를 세우는 신학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어느 신학에 집중하고 있는가? 가진 자에게 편안한 교회인가? 가난한 자에게 희망을, 갇히고 억눌린 자에게 자유와 해방을 안겨주는 그런 교회인가? 붕괴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가 다시 세워진다면 그것은 십자가 신앙에서 출발해야 한다. 쳐다보는 십자가, 걸고 다니는 십자가 말고 지고 가는 십자가를 체험하는 신앙이다. 십자가 은총에 근거하여 무너지는 교회에 대해 경고하고 세워지는 교회를 기대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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