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기도 자판기’는 아니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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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기도 자판기’는 아니신가요?”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9.01.1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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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봅시다 - 습관적 언어보다 마음의 고백을

“기도하겠습니다.” 크리스천이 얼마나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던가. 나 역시 수도 없이 “기도하겠다”는 말을 자판기처럼 쏟아내곤 했다. 몸이 안 좋으시다는 권사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나 친한 동생이 면접을 앞두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독교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했던 후배가 단기선교를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김없이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기도하겠습니다”였다.

하지만 이 지면을 빌어 솔직하게 고백한다. 기도하겠다고 신신당부 약속하고도 실제로 기도의 무릎을 꿇은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처음 몇 번은 미안한 마음과 함께 죄책감도 밀려왔다. 그런데 양심이 무뎌지는 것은 어찌 그리도 빠른지. 어느 샌가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연하장을 찍어내듯 기계적으로 기도하겠다고 답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기도하겠습니다”는 무언가 답은 해야겠는데 마땅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만능 열쇠 같았다.

그게 어찌 기도하겠다는 말 하나 뿐일까. 회중 기도시간에도 ‘습관성 멘트’들은 등장한다. 얼마 전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목사님이 설교를 마치고 기도를 하시는데 내 입에서 “아멘”, “주여”라는 말이 튀어나와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무 성령 충만한 스스로의 모습에 감명 받았기 때문은 아니다. 잠시 딴 생각에 빠져 있었음에도, 기도의 한 문장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아멘”과 “주여”를 반복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흡사 자동응답기와 다름 없었다.

기도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3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내게 갑작스런 대표기도 요청은 그리 당황스런 일이 아니다. 은혜가 충만할 땐 물론이거니와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역시 문제될 것 없다.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기독교식 용어들을 요리조리 조합하면 기도문 하나쯤은 뚝딱 완성된다. 아무런 간절함이 없을 때도 “주시옵소서~!”라는 말이 위화감 없이 튀어나온다. 그런데 문득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 시절 선교단체에서 가는 단기선교를 앞두고 친한 간사님께 기도편지를 드린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간사님의 반응은 여느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 자리에서 내 손을 잡으시더니 주변 사람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단기선교를 위해 기도해주셨다. “나중엔 까먹고 안할 것 같아서 지금 바로 기도한다”는 솔직한 답변이 얼마나 감사하고 대단한지 그때는 몰랐다.

때로는 익숙함이 독이 된다. 어느 샌가 ‘교회의 언어’가 너무 익숙해져서 십자가도, 구원의 은혜도, 기도도 습관적으로 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 충만해 보이는’ 말보단 조금은 유치하고 없어 보일지라도 솔직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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