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잃고 소망 잃은 인디언들, 하나님 나라 꿈꾸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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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고 소망 잃은 인디언들, 하나님 나라 꿈꾸길 소망합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9.01.15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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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호 원주민에게 복음 전하는 ‘전선희 선교사’

수백년 전 침략의 상처 여전…마약·알콜·자살에 노출된 청소년들

백인·기독교는 침략의 상징…‘브라더’ 한국교회가 사랑으로 품어야

아이들 미래 위한 IT학교 설립, 여름성경학교 순회하며 복음전해

▲ 나바호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선희 선교사. 전 선교사는 "선교는 내가 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지난 2016년 5월, 미국에서 한국전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행사가 열렸다. 그런데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우리가 익히 상상하던 미국인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이날의 주인공은 애리조나에 거주하는 나바호 원주민들, 흔히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인디언들이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제강점기 당시, 나라를 잃은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뛸 수밖에 없었듯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인디언들도 미국 국기를 달고 한국전에 참전해야 했다. 그동안 미군들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한 보은행사는 많았지만 한국전에 참전했던 1만여 명의 인디언들은 우리 머릿속에서 잊혀져 있었다.

인디언들이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 것은 미국 내 최대 인디언 부족인 나바호 지역에서 선교하는 전선희·이남종 선교사 부부. 2012년부터 나바호 지역에서 선교하던 전선희 선교사는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싸워준 인디언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에 가만있을 수 없었다. 전쟁 발발 66년 만에 처음으로 열린 행사에서 참전 용사들과 가족들은 연신 감사하다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전선희 선교사는 오히려 우리가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상처 받은 이들의 땅 ‘나바호’

전선희 선교사 부부가 사역하는 나바호는 미국의 인디언 보호구역 중 가장 큰 넓이를 자랑한다. 애리조나 주 북동부와 유타 주의 남동부, 뉴멕시코 주의 북서부에 걸쳐있는 나바호 자치구역의 넓이는 남한 땅의 70%에 이른다. 그 안에 거주하는 인디언들의 수는 약 30만명. 우리나라로 치면 중형 도시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미국 내 인디언 부족 중에서는 가장 많은 인구다.

어마어마한 땅 덩어리에 왜 30만 명밖에 살지 않는지는 나바호에 가보면 알 수 있다. 시뻘건 바위와 사막으로 둘러싸여 흙먼지만 휘날리는 땅. 여기선 농사를 지을 수도, 공장을 돌릴 수도 없다. 그나마 전통의 생계 수단이던 목축업도 사막화로 손을 놓게 된지 오래다.

▲ 나바호 자치국-국제사회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은 국가는 아니지만 '나바호 자치국(Navajo Nation)'으로 불리고 자치 대통령도 있다. 애리조나를 중심으로 유타, 뉴멕시코 등 3개주에 걸쳐있으며 넓이는 한반도의 70%에 이른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진 지는 벌써 수백 년이 지났지만 침략 과정에서 인디언들이 받은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전선희 선교사는 인디언과 백인들의 관계를 우리나라와 일본에 빗대 설명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도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려고 이름을 바꾸고 언어를 못 쓰게 하고 탄압을 했었잖아요? 그보다 앞서 백인들이 인디언을 탄압한 역사가 있었더라고요. 침략 초기 백인들은 인디언들이 그들의 고유어를 쓰면 입 안에 비누를 물렸는데, 그러고 나면 역겨워서 일주일 넘게 음식을 손에 대기 힘들었다고 해요. 또 일제가 했던 창씨개명처럼 인디언식 이름을 못 쓰게 하고 영어로 바꿔버렸죠. 그 당시 염소가 많았던 집안은 ‘매니고트(many goat)’, 계곡에 사는 집안은 ‘스몰캐니언(small canyon)’, 이런 식으로 성의 없이 붙인 성씨(Last name)들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전 선교사는 “아마 한국인이 일본의 침략 역사를 증오하는 것 이상으로 인디언들의 상처가 싶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래서 이들에게 기독교는 원수의 종교이자 침략의 종교다. 복음화율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지금도 기독교를 믿겠다고 하면 왜 원수 종교를 믿느냐는 핍박을 받기도 한다. 메디신맨(medicine man)이라고 불리는 주술사와 인디언 토속 종교 역시 아직 건재하다.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아이들

나바호의 모습을 보면 이곳이 세계최강대국 미국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나바호 인디언들의 40%는 아직도 전기와 수도라는 문명의 혜택에서 멀어져 있다. 목재로 얼기설기 이어 붙인 판잣집은 70년대 즈음 한국 달동네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10년째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전선희 선교사 부부 역시 깜짝 놀랐던 것은 마찬가지다.

“서부에 가족여행을 갔다가 열악한 나바호 원주민들의 삶을 처음 보게 됐죠.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미국에서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의 삶은 주류 미국인들의 관심에서 철저하게 외면 받고 소외돼 있었죠. 너무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미국 속 아프리카로 불리는 나바호엔 제대로 된 직업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다. 대부분 관광 수입과 인디언 전통 소품 판매에 기대 생계를 이어간다. 흔히들 미국 정부에서 인디언들에게 보조금을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해다. 모든 국민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초생활수급을 제외하면 이들이 받는 보조금은 일절 없다.

이 드넓은 땅에 의료시설이라곤 보건소 단 한 군데 뿐. 학교도 초등학교까지 밖에 없어 중학교 이후론 왕복 2~4시간을 들여 나바호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열악한 생활환경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청소년들의 마약과 자살 문제다.

“나바호 아이들은 중학생 나이만 돼도 이미 마약에 중독돼 있어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줄 교육시설도 없고 놀이 문화도 없고 희망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마약을 안 하면 또래 사이에서 왕따를 당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없다 보니 자살률도 엄청 높아요. 자살을 한 아이들 중엔 9살밖에 안 된 아이도 있었어요. 청소년 자살은 나바호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죠. 이곳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 나바호의 복음화율은 아직 미미하지만 토속종교 주술사가 예수를 믿고 온 가족을 교회로 인도하는 등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메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백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날이 서 있는 이 곳에선 백인 선교사들의 사역 역시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인은 다르다. 몽골리안 계통인 인디언들은 한국인을 형제처럼 여긴다. 인디언 사역에서 한국인과 한국교회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나바호에서 20년 넘게 사역했던 백인 선교사들은 한 번도 인디언들에게 ‘브라더’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해요. 그런데 저희 부부가 갔더니 하루 만에 브라더, 시스터가 됐죠. 그때부터 인디언 사역은 한국인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전선희 선교사 부부가 나바호에서 사역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12년. 백인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역 초기 3년은 이들의 신임을 얻는데 힘을 쏟았다. 이젠 같이 살고 먹고 자고 울고 웃으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이웃이 됐다.

기반을 다진 후 나바호에 어떤 사역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가장 도움이 절실했던 것은 나바호의 아이들이었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마약에 찌들어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직업도 없이 기초수급으로 연명하는 어른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이대로 아이들이 자란다면 희망 없는 미래가 반복될 것은 불 보듯 뻔 한 일이었다.

다음세대의 미래를 바꿀 교육시설이 가장 시급했다. 그때 전 선교사 부부의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는 바로 컴퓨터. 컴퓨터와 뉴미디어를 가르치면 다른 미국인들과의 교육 격차를 빠르게 좁힐 수 있을뿐더러 프로그래밍과 코딩 기술을 통해 전문직으로 취업까지 할 수 있을 터였다.

어렵사리 장소는 구했는데 실습용으로 쓸 컴퓨터가 문제였다. 방과 후 교실을 열기로 계획한 날짜는 점점 다가오는데 준비된 컴퓨터가 단 한 대도 없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컴퓨터를 가르치러 오기로 한 봉사팀에게 솔직히 털어놨다. “여러분, 면목 없지만 컴퓨터 후원이 필요합니다.” 봉사팀은 머물기로 한 호텔을 저렴한 숙소로 바꿔가며 중고 컴퓨터 17대를 가지고 왔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튜터링 스쿨(tutoring school)이 시작됐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컴퓨터를 보면 눈이 반짝거려요. 이젠 정부의 인가를 받은 기독교정보기술학교(Christian Information Technology School) 설립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학교가 세워지면 연령에 관계없이 열정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전액 무료로 배울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에요.”

학교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감을 얻고 미래가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전선희 선교사의 눈은 언제나 이들의 영혼을 향해 있다. 기술 교육보다, 풍족한 양식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확신에서다. 전 선교사 부부는 한국의 여름성경학교에서 착안해 이곳에서도 방학 성경 학교(Vacation Bible School)를 연다.

넓은 땅에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인디언들의 특성 덕분에 모든 지역에 성경학교를 진행하려면 꼬박 세 달을 온전히 불태워야 한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나면 녹초가 되고 만다는 전선희 선교사. 그래도 복음으로 변화되는 인디언들의 삶을 볼 때마다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다. 올해는 진심으로 선교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북미선교협회(Association of North America Missions)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나바호 선교사상도 받게 됐다.

“이들이 비록 이 땅에서는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환경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더 바라보고 꿈꾸게 되길 소망합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너무나 쉽게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이들에게 복음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마약과 알콜에 중독된 나바호가 복음으로 다시 생명을 얻도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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