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이 낳은 비극, 무국적자 ‘리무산’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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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이 낳은 비극, 무국적자 ‘리무산’을 아세요?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9.01.14 2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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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무산의 서울 입성기', 탈북청소년 전문 박경희 작가 비참한 ‘무국적 2세’의 삶 조명

‘리무산’. 그는 무국적자다. 북조선 출신인 엄마와 중국 한족 출신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엄마는 불법으로 중국에 체류했기 때문에 아빠는 무산이를 호적에 올리지 않았다. 그는 중국인도, 조선인도, 그렇다고 탈북자도 아니다. 국적도 없이 떠도는 ‘난민’일 뿐이다.

탈북청소년 전문작가로 알려진 박경희 작가가 이번에는 탈북이 낳은 또 하나의 비극에 초점을 맞췄다. 어린이용 동화로 써내려간 ‘리무산의 서울 입성기’(뜨인돌어린이)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탈북 여성과 한족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무국적자 난민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지난해 탈북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수업에서 박 작가는 처음으로 무국적자 아이들을 만났다. 그들 역시 분단이 낳은 상처였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탈북 청소년들이 받는 혜택에 비해 그들은 한족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법외 지역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다.

“분단이 낳은 비극이죠. 저도 그렇게 국적 없이 떠도는 아이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탈북 청소년들의 아픔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리무산과 같은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이들 역시 남한 사회가 품어 주어야 할 약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죠.”

국경을 넘은 탈북자들은 중국이나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다. 공안의 단속이 심해지면서 탈북여성들은 불법체류 단속을 피해 한족과 혼인하여 숨어 지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불법 체류자와는 혼인신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한족과 탈북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호적에도 오르지 못한 채 ‘무국적자’로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호적에 올리려면 엄마의 신원을 밝혀야 하는데 탈북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으로 추방되기 때문이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학교에도 다닐 수 없는 무국적자. 한족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후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대한민국을 찾아오지만 이들은 여기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중국에서도 대한민국에서도 이들은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다.

‘리무산의 서울 입성기’는 국적도 없이 중국에서 살다가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리무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12살 어린이의 이야기다.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엄마는 어느 날 공원을 떠도는 무산이에게 사람을 보냈다. 경찰의 눈을 피해 밤낮을 걷고 메콩강을 건너 태국 난민 수용소까지 목숨을 걸고 이동하면서도 무산이는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대한민국에 도착하면 국적도 얻을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태국 난민수용소에서 3개월. 친어머니가 한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고서야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 우여곡절 끝에 남한에 도착한 무산이에게는 알록달록한 새 가족이 생겼다. 그러나 그가 국적을 인정받고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 살아가기까지는 녹록치 않은 과정이 남아 있다.

하나원을 거쳐 엄마를 만난 무산이에게는 무지개와 같은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하지만, 무산이가 헤쳐 나가야 할 대한민국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한 나라 국민으로 인정받기까지 그가 넘어야 할 산은 높기만 하다. 어린 무산이의 한숨이 ‘조국’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나는 중국 사람도 아니고… 북한 사람도 아니잖아. 아직은 완전한 한국 사람도 아니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아.”

동화는 다문화학교에 입학해 대한민국의 삶에 적응하는 ‘리무산’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 하지만 자유를 찾아온 수많은 ‘리무산’들은 여전한 어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 말이다.

박경희 작가는 “시리아 난민, 예멘 난민 등 우리 사회가 여러 난민문제에 관심을 보이지만, 우리 핏줄이 섞인 탈북난민, 그리고 그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놓인 한족과 탈북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무국적 난민의 삶에 대해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국적 없이 떠도는 수만 명의 아이들은 분단이 낳은 비극이고, 통일시대가 감당해야 할 소중한 우리의 자녀”라고 강조했다.

지난 67년 동안 깊게 뿌리내린 분단은 너무나 수많은 가지를 뻗어냈다. 그 한 가지, 한 가지에 달린 아픔과 상처는 통일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린이 동화를 통해 무국적자의 삶을 담담히 그려낸 박경희 작가는 “무국적자 ‘리무산’도 우리가 보듬어야 할 분단의 아픔”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남겼다.

▲ 탈북청소년 전문작가로 활동하는 박경희 작가는 탈북난민 소설에 이어 중국 한족과 탈북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무국적자들의 삶을 동화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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