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이 1,00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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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이 1,000억원?
  • 이수일 목사
  • 승인 2019.01.0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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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 목사/흰돌교회

얼마 전 미국의 전설적인 복서 메이웨더와 일본의 킥복서 나스카와가 세기의 대결을 벌였다. 메이웨더의 1라운드 TKO승으로 싱겁게 끝난 경기에서 승자는 무려 1,000억원의 대전료를 받았다고 한다. 2분10초만에 경기를 끝내면서 초당 7억을 번 셈이라니 실로 경이롭기까지 한다. 언론은 이번 경기로 ‘1,000억원’을 챙긴 메이웨더를 조명하면서 당사자에겐 용돈 수준에 불과할 거라고 예상했다.

발재간이 남보다 뛰어나 공 좀 찬다는 것 때문에, 혹은 나무 방망이로 날아오는 공을 남보다 잘 때려낸다는 것 때문에 우리 같은 인간은 평생 구경도 못해 본 수천억을 버는 운동선수들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유명한 스타들과는 종이 한 장 차이면서도 대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박한 대접을 받으며 이내 그 꿈을 접어야 하는 많은 이들의 모습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물질만능의 모습, 이런 사회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의 장점 중 하나는 자신의 능력만큼 평가를 받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다는데 있다. 누구나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고, 각자가 지닌 재능만큼의 대가가 지불되는 사회이기에 일면 공평한 사회처럼 보이지만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승자독식의 어그러진 모습들이 너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진정 자본주의 사회가 기회균등의 사회일까? 누구나 노력만 하면 어느 누구든 상관없이 개인의 꿈이 이루어지는 사회일까?

가끔씩 자수성가해서 평소의 꿈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가 곧잘 간증거리로 회자되기도 하지만 노력만큼의 대가를 얻지 못하고 살아가는 서민들이 더 많다는 것을 감출 수가 없다.

정규직이란 이름의 근로자들과 같은 노동을 해도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으면서 저항할 수조차 없는 비정규직의 삶에서 기회균등의 꿈은 허상이고 사치일 뿐이다. 우리의 목회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많은 이들이 신학을 공부한 끝에 목회현장으로 나가보지만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기만 하다. 일반사회의 시각은 교회가 온통 대형화 되는 추세인 것처럼 호도하고, 목회자는 탈세의 주범이나 된 듯 몰아가지만 실상은 영 딴판인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여러 오지의 교회들을 찾아가보면 그야말로 눈물겨운 목회현장을 너무나 쉽게 만나게 된다. 박봉의 사례, 아니 사례라고 말할 수도 없는 부자 주머니의 용돈과도 비교가 안 되는 푼돈을 거액(?)처럼 생각하면서 저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목회자들과 사모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감격이고 감동인 동시에 아픔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자본주의의 세찬 물결 앞에서 궁핍하기 이를 데 없는 다수의 목회자들은 수세에 몰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같은 예수의 진리를 추구하며 공동체의 운명을 함께 해야 할 동역자들 조차 목회형편이 여의치 않아 보이는 목회자들을 무능하게만 보는 현실은 수많은 미자립 목회자들을 더욱 외롭게 만든다. 황금이 만능인 사회, 목회자도 교인숫자로 평가받는 현실 속에서 진리를 사수하며 저 천성을 향해 묵묵히 걷고 또 걷는 수많은 이들에게 격한 찬사를 드리고 싶다. “당신들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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