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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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9.01.02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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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 목사의 교회사 산책 - 칼뱅과 프랑스의 종교개혁(10)

칼뱅은 죽을 때까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일하였습니다. 칼뱅은 점점 쇠약해지는 몸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머리와 다리의 통증을 느끼고 있었고, 피가 섞이는 침을 뱉기도 했으며, 숨 쉬기를 힘들어 했습니다. 몸이 약했던 그는 13가지나 되는 병을 지니고 있어, 사람들이 ‘움직이는 병동’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였습니다. 

여러 해 동안의 과로와 피곤과 교회를 위한 근심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장시간 집무를 계속하였습니다. 부디 휴식을 취하라고 권하는 친구들에게 그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내가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걸 보시면 어떻게 하지?”라고 답하였습니다.

너무나도 몸이 쇠약해져서 정상적인 업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그는 자기가 미처 처리하지 못하는 서기의 급료를 받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의 수입은 상당한 편이었으나 주로 구제 사업을 위해 이것을 바쳤기 때문에 재산은 불과 얼마 되지 아니했습니다.

병이 깊어졌을 때에는 들것에 실려 교회당에 가서 강단에 앉아서 설교하곤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에 진력을 다하던 칼뱅은 1564년 2월 6일에 마지막 설교를 하고 병석에 누웠습니다. 아침 설교는 열왕기상이었으며, 오후에는 에스겔서에 관한 65차 강의를 하였습니다. 강의 후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이미 천국의 문턱에 들어갈 수 있는 소망 중에 있으며, 하늘에는 이미 우리를 위해 예비된 집이 있습니다…비옵기는 우리도 매일매일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계속적으로 그 목적을 향하여 정진하고, 우리가 이미 맛본 하늘나라의 영원한 영광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월 25일 목회자들을 만나 마지막 권면을 했고 한 사람씩 손을 잡고 인사를 했습니다. 마지막 유언도 남겼는데 그의 후계자 데오도르 베자가 쓴 ‘칼뱅의 생애’에 전문이 소개되었습니다. 4월 28일 대의회는 칼뱅의 침실을 찾았고, 5월 2일에는 최후의 편지를 누사텔에 있는 파렐에게 보내어 빨리 제네바에 와서 함께 마지막 날들을 지내자고 부탁하였습니다. 당시 파렐은 80세였습니다.

칼뱅은 임종시까지도 ‘여호수아 주석’을 집필하던 가운데 있었는데, 결국 이를 가지고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격이 되었습니다. 데오도르 베자는 칼뱅의 마지막 날들을 묘사하여 “겨우 영혼밖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칼뱅은 5월 27일, 55세를 일기로 베자의 품에 안기어 임종하였습니다. 다음날 사람들은 그의 유언에 따라 플랭-팔리에의 일반 묘지에 묘비도 세우지 않은 채 매장하였습니다. 칼뱅의 일생은 묘비가 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끝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제네바로 와서 그의 신앙, 사상 그리고 그의 삶 자체를 체득하고 돌아갑니다. 그로 말미암아 비로소 종교개혁과 민주주의의 꽃은 활짝 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칼뱅이 자신의 묘비를 세우지 않기를 바란 것은 그의 겸손을 잘 말해 줍니다. 즉 사후(死後)에 자신이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보다는, 하나님만이 기억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칼뱅은 진정 위대한 용기와 완전한 헌신을 소유한 인물이었습니다.

평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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