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반대자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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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반대자들(2)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8.12.2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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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 목사의 교회사 산책-칼뱅과 프랑스의 종교개혁(9)

반삼위일체주의자였던 미카엘 세르베투스(1511~1553)는 칼뱅에게 가장 치명적인 불명예를 안겨다 준 사람입니다. 세르베투스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가장 궁금한 것은 ‘왜 종교개혁자가 자기와 교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세르베투스를 화형시켰느냐’하는 점입니다. 과연 칼뱅이 세르베투스를 화형 시켰을까요?

세르베투스는 개인적인 성경연구를 통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그의 사상을 ‘삼위일체 오류론’을 통하여 발표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파리로 가서 의학을 공부하고, 1541년부터 1553년까지 비엔나의 대주교 주치의로 일하였습니다. 이때에 그는 칼뱅과 교제하게 되었지만, 얼마 못 가서 그의 정체를 발견한 칼뱅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세르베투스는 1553년 자신의 원고 ‘기독교의 재건’을 완성하여 빈에서 비밀리에 익명으로 1,000부를 인쇄했는데, 무려 734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은 세르베투스의 대표적 저서이며 자신을 파멸로 이끈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사상을 설명하면서 삼위일체 교리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하여 부인하였습니다. 

이전에 리옹의 시민이었던 기욤 드 트리는 세르베투스가 칼뱅에게 보낸 편지들 가운데 일부를 입수하여 그를 리옹의 종교 재판관에게 고발함으로써 그와 그의 원고를 펴낸 인쇄업자들이 구속되었으나 재판을 받는 동안 세르베투스는 제네바로 도망갔고, 사형을 언도한 스페인 종교 재판소는 그의 초상을 불태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후 칼뱅은 세르베투스가 제네바로 온다는 말을 듣고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세르베투스는 제네바에 칼뱅의 적들이 많으므로 그들과 합하면 칼뱅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고 제네바로 왔습니다. 그러나 제네바 시 당국은 그가 도착하자마나 체포하였고, 이단과 신성모독 죄로 정죄하였습니다. 

세르베투스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제네바 시가 세르베투스에게 화형 선고를 내리자, 칼뱅은 좀 더 인간적인 방법을 취할 것을 시의회에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칼뱅에 적대적이던 시의회는 이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칼뱅은 2개월 13일간 세르베투스를 지하 감옥에 가두고 온갖 방법으로 그의 개심과 수정을 요청하였으나 그는 끝내 듣지 않았습니다.

1553년 10월 27일 세르베투스는 결국 칼뱅에게 보낸 원고 뭉치와 함께 모든 형벌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산채로 불태워지는 화형(火刑)에 처해졌습니다. 훗날 칼뱅은 화형 대신 참수형 같은 형벌로 바꿔보려 했다고 밝혔으나 지나친 형벌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1903년 처형지인 제네바 근교에 속죄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칼뱅이 세르베투스를 처형하는데 앞장섰다고 비난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르베투스를 죽인 범인은 누구인가? 그를 죽인 자를 자유파로 생각했습니다. 세르베투스는 이단자로 죽은 것이 아니라 모반자로 죽은 것입니다.

물론 반 삼위일체론자라는 말도 있지만, 사회를 전복시키려고 했던 모반자이기 때문에 제네바 시의회는 그를 화형이라는 극형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세르베투스는 이방인인데 그가 모반하기 위해서는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가 바로 자유파입니다.

평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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