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반대자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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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반대자들(1)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8.12.1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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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칼뱅과 프랑스의 종교개혁(8)

칼뱅의 제안대로 ‘교회 헌법’이 시정부에 의하여 통과되었지만, 제네바 개혁에는 많은 어려움이 산재해 있었습니다. 다수의 시민들이 칼뱅의 도덕적인 개혁에 대해 불만을 품고 대항했습니다. 그가 목회를 할 때 반대자가 많았지만 16세기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사람들의 말입니다. 그 당시에는 이단자를 처형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칼뱅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자는 칼뱅이 피에 굶주린 자였다고 말합니다. 

(1) 자유파 / 칼뱅에게 대항했던 대표적인 세력인 자유파는 칼뱅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엄격한 윤리 생활을 요구하자 칼뱅에 대한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특히 카드놀이 제조업자였던 피에르 아뫼는 칼뱅의 개혁 운동으로 유흥을 멀리하는 풍조가 일어나 막대한 재정적인 손실로 파산지경에 이르자 카드놀이를 금지시킨 칼뱅을 증오하기 시작했습니다. 칼뱅이 잘못된 교리를 가르친다고 중상 모략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1553년 원로원 회원으로 당선되자, 장로 법원이 가졌던 출교권을 시의회로 환원시키려고 하여 칼뱅에게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2) 카스텔리오 / 자유파 사람들이 교회 헌법과 장로회 때문에 대적을 했다면 카스텔리오 이후 소개하는 사람들은 칼뱅의 신학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세바스챤 카스텔리오는 사보이 출신으로 154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칼뱅을 만나 개종하였으나, 인문주의적인 사상 때문에 칼뱅의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카스텔리오는 삼위일체론, 예정론, 자유의지론, 신론, 천사론 그리고 종말론 등을 구원과 관계없는 교리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교리에 대한 견해 차이로 추방하거나 구속, 투옥, 화형, 교수형을 선언하는 것은 교권의 횡포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는 교리보다 중요한 것이 도덕적인 생활이므로, 교회가 교리적인 문제로 성도를 박해하는 것은 위선적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카스텔리오에게서 영향을 받은 즈윅은 ‘잔인한 칼뱅’에 대해서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칼뱅을 거의 난도질하게 됩니다. 

(3) 볼섹 / 칼뱅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개종하여 제네바 근교에서 의원을 개업한 제롬 볼섹의 중상모략을 받았습니다. 그는 원래 파리에 소재한 카멜파 수도사였으나, 이태리에서 의학 수업을 받은 후 프랑스의 샤블레에서 생활하면서 칼뱅과 교제하였습니다. 

그는 1551년 제네바에 도착하여, 칼뱅의 예정 교리가 하나님을 죄의 저자로 만든다고 주장하며 칼뱅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는 샤블레에서 칼뱅에 대한 인신공격을 계속하면서 예정 교리를 비판하던 중, 오를레앙 교회회의와 리용 교회 회의에서 정죄를 받은 후, 로마 가톨릭교회로 돌아갔습니다.

이와 같이 칼뱅의 반대자들은 신학적으로 그릇된 사상을 주장하며 정치적인 세력으로 대항할 뿐만 아니라, 야비한 방법을 동원하여 칼뱅을 괴롭혔습니다. 

그가 자주 다니는 골목에 사나운 개를 풀어놓는다던가, 예배 중에 교회를 향하여 총을 쏜다던가, 그가 설교할 때 크게 기침 소리를 내어 설교를 방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칼뱅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러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제네바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다스리는 곳으로 만들어 나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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