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인데 어느 자리에 초청받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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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인데 어느 자리에 초청받았나요?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8.12.1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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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71
▲ 펠릭스 조제프 바리아스, 사탄이 그리스도를 유혹하다. 1860년.

누가복음4:1-13>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올해에도 연말은 모임으로 분주하다. 사회 곳곳에서 일하는 약자들이 고통 속에 숨져가는 일이 빈번해지고, 정치도 불안하며, 경제는 바닥의 바닥을 치고 있다는데도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는 그 누구도,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는 듯하다. 특히 명품소비가 급증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은행이 발표에 다르면 전국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지난해 2월 93.9를 기록한 이후 2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라는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의 명품판매와 해외여행은 연말일수록 더욱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좀더 저렴한 물건으로 승부를 거는 대형마트나 시장  등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명품 시장에서 ‘20대’ 소비자가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어서 어느 백화점은 명품 매출 중 20대 소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30%가 넘어서 30대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명품에 대한 젊은층의 욕망은 얼마나 과한지 어느 명품가방은 가격을 네 번이나 올렸는데도 오히려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현상은 백화점이나 대형쇼핑몰마다 앞 다투어 최첨단 ‘VR테마파크’를 설치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이 연말 분위기와 어우러져 젊은이들 뿐 아니라 좀 살만하다는 평범한 노년층까지 해외여행으로, 명품관으로, VR테마파크로 몰려가고 있다. 기독인이라고 다를까? 좀더 근사해 보이는 것, 좀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 좀더 새로운 것을 향해 시간과 돈과 마음과 힘과 정성을 쏟아가며 달려가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라면 기독인도 그 욕망의 대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로 가셨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성령의 이끌림’의 결과가 광야였다. 천사들이 옆에 있는데도 예수님이 성령을 따라 가신 곳은 광야였다. -천사가 옆에 있으면, 성령충만하면 모든 고통 끝! 백프로 행복한 삶 보장!이라는 기가 찰 정도로 허망한 망상을 심어주는 가짜 설교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광야에서 예수님은 우아하게 광야 특유의 슬로 시티(slow city)적인 우아한 시간을 보내신 것이 아니다.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하며 식물을 가꾸고, 가끔씩 반가운 친구들의 방문을 받거나 인터넷으로 세상문화를 즐기신 게 아니었다. 굶주리고 목마르며, 외롭고 춥고 더우며, 온갖 동물과 벌레들의 위험 속에 계셨다. 

그런데 광야 기간 마지막에 사단이 찾아왔다. -예수님을 수종들던 천사들은 언제쯤 예수님 곁을 떠나셨을까? 사단이 와서 시험할 때에도 천사들은 예수님 곁에 계셨을까?- 와! 사단은 성령님이나 천사들과는 달랐다. 사단이 예수님을 초청한 곳은 천하만국을 한 눈에 다 볼 수 있는 그야말로 현대판 VR테마파크 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사단 마음에 한번만이라도 들게만 한다면 천하만국, 즉 세상 모든 권세와 모든 영광과 모든 부귀를 다 준다고 한다. 딱 한번만 사단에게 고개를 숙이기만 하면 된다. 

요즘 10억만 줘도 살인할 수 있다고 하는 청소년들이 넘쳐나는데, 만약 이런 제안을 사단이 한다면 청소년은 물론 구순 노인도, 심지어는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성도들도 ‘오, 예스!’라며 고개 한번 숙이지 않을까?

사단의 두 번째 초청은 성전 꼭대기였다. 천하만국을 보여주는 것이나 성전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세상이나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한다. 나 역시 남산 타워나 롯데 타워, 파리 에펠탑, 도쿄타워, 그리고 몽블랑에 갔을 때…세상의 지극히, 지극히 일부분이나마 꼭대기에서 내려다 볼 때에 심장이 뛰었었다. 

사단은 웬만해서는 우리를 낭떠러지 바닥으로 내동댕이치지 않는다. 그런 경우가 있다면 대부분은 내 잘못과 죄 때문이다. 사단은 할 수 있는 한 우리를 좀더 높은 곳, 더 많이 보이는 곳, 더 더 화려한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그래서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고, 거대한 비전을 품게 하며, 내가 있을 자리는 이런 데가 아니라며 다른 길로 하게 한다. 

그러나 성령님의 초청 자리는 눈으로 보기에는 늘 초라하고, 쓸쓸하며, 있는 비전마저 산산히 부서지게 하신다. 그래서 그 초청의 자리는 눈물의 마루바닥이거나, 자기 부인의 흙바닥이며, 지독한 외로움의 지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곳을 통과하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가나안 혼인잔치(요한복음2장)에서 예수님이 만들어주신 기쁨의 포도주를 마시며 흥겨운 잔치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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