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 말고 성탄의 노래를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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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 말고 성탄의 노래를 부르자
  • 장준식 작가
  • 승인 2018.12.1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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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식 작가/북가주 세화교회 담임목사

1880년대,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오고, 그 이후 개신교가 한국의 문화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수많은 질곡이 있었다. 여러 가지 상황이 겹치면서 정말 마법같이 성탄절이 한국의 가장 큰 축제의 절기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소식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무겁고, 더불어 기독교 문화를 지켜 나가야 하는 책임 또한 크다.

우리는 도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 사회나 미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소수 종교가 되어 중국에서처럼 지하로 내려가고 탄압을 받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문화 형성은 쉬운 게 아니지만, 한 번 형성된 문화 또한 해체되는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잘못된 문화는 투쟁하여 고쳐나가야겠지만, 거룩한 문화는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지켜나가야 한다.

캐럴은 ‘기쁨의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뻐하며 춤춰야 한다. 이 기쁨의 시간에 다른 곳에 있으면 안 된다. 함께 모여 캐럴을 부르며, 그리스도의 오심을 세상에 널리 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성탄절 문화를 지켜내지 않으면, 누가 대신 지켜주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 서로 짐을 지는 수고가 필요하다.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우리를 도전한다. “만인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3절).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기 위하여 아무 것도 하는 게 없으면서, 다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우리는 왜 서로의 짐을 지고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기를 두려워하는가?
가장 큰 이유는 그러한 일을 하다 ‘낙심’할까봐서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 하나쯤이야 빠져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무엇이 달라진 거야? 똑같잖아!’ 이러면서 우리는 낙심한다. 

그러나 기억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낙심 중의 낙심’이다. 2천 년 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데, 세상이 달라진 게 있는가? 

세상에는 여전히 폭력이 난무하고 평화가 묘연하다. 이런 세상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할 수 있는가.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우리를 위로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9절).

도산 안창호 선생은 때때로 교회의 신자들 앞에서 설교할 정도로 성경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러한 도산의 이력을 토대로 추측해 보건 데, 도산은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마음속에 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6) 진실로 선을 행하고 있다면 낙심할 필요 없다. 도산은 이렇게 말했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낙심하지 말고, 우리의 정체성(Christian identity)을 지켜 나가기 위하여, 성탄절의 거룩한 문화를 지켜 나가기 위하여 서로 짐을 지며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 나가자. 성탄절기에 다른 계획 세우지 말고, 더 열심히 교회로 모이고, 더 열심히 캐럴을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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