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기쁘다? 아니! 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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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기쁘다? 아니! 아, 부끄럽다.”
  • 강석찬 목사
  • 승인 2018.12.1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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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예따람공동체

매년 돌아오는 성탄을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진 모든 교회들은 “아,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며 준비한다. 그런데 성탄을 맞이하는 시론자의 생각은 “아, 기쁘다? 아니! 아, 부끄럽다.”이다. 어쩌면 성탄준비로 들뜬 교회에 재를 뿌리는 흰소리는 아닐까? 죄송한 마음이지만, 내야 할 소리를 내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광야의 소리’가 펜을 이끌어 갔다. 물론 시론자가 교만하게 세례요한과 같다는 뜻은 아니다. 시론자도 흰소리를 들을 만하기에 부끄러워하며 시론을 나눈다.

최근 한국교회는 세상법정의 대형교회 성직자들에 대한 판결 소식을 접했다. 판사의 선고에 대한 교회의 반응이 “무슨 소리? 우리는 잘못이 없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법이 있다. 세상이 모르고 세상의 잣대로 판단한 것일 뿐이다.”였다. 이 항변(?)의 옳고 그름의 시비를 따지기 전에, 이런 교회의 반응을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교회의 주장을 옳게 여길까? 따져보아야 한다. “뭐라고? 법 위에 교회가 있나? 웃기네. 교회가 세상 법을 무시한다면, 흥! 불법단체로구먼! ‘내로남불’이로구먼! 법을 어기면서도 뻔뻔하게 우리들을 향해 교회 다니라고? 예수 믿으라고? 너희나 잘해라. 당신들이나 구원 받아 영원히 사시오”라며 비아냥거린 말을 많이 들었다. 불법을 행하는 교회라고 지탄하는 소리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대형교회들에서 일어난 부정하고 불의한, 듣기 거북하고 불편한 사건들을 자주 듣는다. 그래서 대형교회를 비난한다. 그러면 과연 중형교회, 소형교회, 개척교회들은 다를까? 감히 ‘나는 빼고’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 두 마리 미꾸리가 연못물을 흐린 것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터져 나오는 부끄러운 사건들은 모두가 잘못된 가치관, 세속화되고 물질 중심의 사고구조가 생산한 불의들이다. 여기에서 중형교회나 소형교회, 개척교회들은 세속의 가치에 매몰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복음의 빛에 비추어 보자. 오늘의 교회들과 신도들이 거룩한 교회를 이루고, 성도로서의 거룩을 잘 지키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대형교회를 비난하면서도 부러워하거나, 지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사회는 온통 비리투성이인 것 같다. 그 속에 교인들도 있다. 내부적으로 타락하여 곪아 터지기 직전으로 화농(化膿)하였지만, 용기가 없어서 그냥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나?”하면서 포기한 상태는 아닐까?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교회들이 “아 기뻐라, 구주 오셨네.” 찬송만 하는 ‘성탄 맞이’는 ‘당신들만의 잔치’일 뿐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를 완성하기 위하여 오시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맞이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敬畏 않고), 하나님 없이 물신(物神)만 넘치게 한 잘못을 회개하고, 이웃사랑은 양념으로 사용하고 자기성장에만 빠져 배 불리기에 집중했던 오류 등을 바꾸는 것이다. 환골탈태(換骨奪胎)의 회개는, 복음에 덧칠한 세속의 물감, 어느새 피부에 동화되어 부패하면서 주님의 교회를 질식시키는 것들을, 상처가 생기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상처에서 피가 나더라도 벗겨내고 씻어내는 것이다. 복음의 빛을 세상에 보이게 하는 것만이 올바른 성탄준비이다.

올 해는 마가복음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자로 영접하는 첫 외침 “회개하라. 복음을 믿으라”(막 1:15)의 뜻을 새기는 ‘성탄 맞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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