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당신의 ‘타자 감수성’ 지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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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당신의 ‘타자 감수성’ 지수는?
  • 김수연 기자
  • 승인 2018.12.03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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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셀 모임에서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연인과 데이트하는 날, 선물 받는 날 등 향락적·상업적으로 물든 크리스마스에 대한 반성이 이어졌다.

그런데 한국생활 1년차인 한 아프리카 친구가 토로하듯 내 뱉은 뜻밖의 말에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에 타면 사람들이 스마트 폰만 들여다보는 풍경은 아직도 적응이 안돼요. 아프리카에선 반갑게 ‘굿 모닝’ 인사도 건넸는데….” 필리핀 친구도 조심스레 맞장구쳤다. “교회 안 한국인들은 한없이 상냥한데 교회 밖 한국인들은 가끔 너무 차가워서 상처 받아요.”


문득,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교회와 세상에서의 온도차가 얼마나 될까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졌다. 뜬금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들의 요지는 크리스마스 때만 ‘반짝’이 아닌 평소에도 주변 좀 살피며 살자는 것이었다.

분열과 대립이 만연한 요즘 ‘타자 감수성’이 절실해 보인다. 달리 말하면 ‘공감’ 혹은 ‘관심’이랄까. 이웃을 외면한 각박한 일상은 두말할 것도 없다. 노인·이주노동자·갑질·분노범죄 등 약자에 대한 폭력은 물론, 이념·세대·인종·젠더 갈등의 기저에는 타자에 대한 감수성 결여가 뿌리내린듯하다. 누군가를 혐오하기에 앞서 그가 느낄 아픔을 헤아리는 태도, 힘없는 이들에 대한 배려 넘치는 시선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생존이 당면과제인 무한경쟁 시대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타인을 돌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타자 감수성은 오늘날 우리사회의 많은 갈등을 해결해줄 의외의 해법이 될 수 있을 터다. 혹자는 개인이 살기 위해 타자를 밟고 올라가야 한다 말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두가 살 방안은 타자와 함께 가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기예수의 탄생이 지니는 의미를 떠올려본다. 마구간이란 가장 미천한 곳에서 태어나 고아와 과부, 병자 등 낮은 자를 환대한 예수님의 사역을 본받아 우리도 지금껏 신경 쓰지 못했던 타자에 대한 남다른 감수성을 일깨워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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