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김장의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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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장의 고수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8.11.20 0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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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김장을 했다. 부모님을 도와 배추를 썰고 절이고 헹구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다. 

환갑의 우리 어머니에게도 김장은 긴장되는 일인가보다. 장가보낸 아들네, 고마운 동생네까지 다 먹일 만큼 넉넉한 양의 김장을 하려니 시작 전부터 예민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신다. 

이런 어머니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앞집 사는 도현 할머니다. 할머니는 해마다 김장철이면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의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신다. 

도현 할머니의 특징이라면 환갑의 우리 어머니에게도 시집살이의 추억을 떠오르게 할 정도의 잔소리꾼이라는 점이다. 동네 어느 집에 가도 할머니는 대장이다. 우리 동네 이장님도 할머니 앞에서는 한수 접고 들어가는 것을 내가 봤다. 

할머니가 심한 잔소리를 하면서도 동네 아주머니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비결은 뭘까. 할머니는 그 힘든 김장을 도와주면서도 땡전 한 푼 받지 않는다. 어느 해에는 우리 어머니가 고생하셨다며 봉투를 찔러드렸다가 호되게 혼이 났다. 오히려 “나 죽기 전에 김장 담그는 법이나 제대로 배워둬”하시며 해마다 어머니 하시는 김장을 하나하나 간섭하신다. 어쩌면 이건 할머니 스스로 본인의 품위를 지키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이런 할머니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나는 한국교회와 기자의 관계를 떠올렸다. 취재 현장에 가면 고생한다며 고맙다며 작은 선물이라도 건네주려는 분들이 있다. 당연히 거절하지만 그때마다 늘 고민이 된다. 좋은 뜻에서 주는 성의인데 괜히 거절감만 안겨드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욕먹는 기자들이 유독 많은 시대다. 기자라는 직군이 신뢰를 회복하고 한국교회의 파수꾼의 역할을 능히 감당하려면 도현 할머니의 품위를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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