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한 것보다 더, 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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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 것보다 더, 더, 더!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8.11.13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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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67
▲ 달란트 비유(마태복음 25:14~30), 1712년, 목판화.

빌레몬서 1:21>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you will do even more than I ask).

요즈음 나는 토요일 오전 9시 반부터 중고등생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창작캠프를 3시간 진행한다. 그리고 끝나자마자 곧바로 서울로 나가서 글로벌센터에서 이주 여성들을 위한 동화책 글쓰기 수업을 4시간 동안 진행한다. 7시간의 수업을 통해 작가가 되려는 청소년들과 우리글을 배워서 작품을 쓰려는 이주 여성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도 다른 2번의 수업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학생들은 토요일 아침부터 피곤한 몸으로 도서관에 온다. 첫 시간에는 얼굴 가득 지친 기운이 역력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열정이 피어오르며 청소년 특유의 활기를 내뿜는다. 그 중 한 여학생은 어머님이 일산에서 목회를 하는데 금요철야 예배를 드리고 온다. 

하지만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내주는 과제물에 대해 열심을 넘어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은 작업을 해오는 아이들, 숙제를 내준 만큼 정확하게 해오는 아이들, 그리고 매번 핑계를 대며 미진하게 해오는 아이들, 이렇게 3그룹으로 나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주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시의 사업으로 진행되는 이 글쓰기 수업은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에 온 여성들에게 ‘자기 나라의 이야기’를 한글로 써서 작품화하는 방식이다. 몇 년 전부터 해오고 있는 이 수업은 의외로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전국의 다문화 시설과 기관에 공문을 보내어 이주여성들에게 글을 응모하게 한다. 

이렇게 해서 모아진 글을 심사를 하여 10여 편을 뽑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글을 가르쳐서(즉, 우리말로 올바르게 문학작품으로 완성하기)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주여성들은 우리말로 글쓰는 상당한 실력을 얻는다. - 그러면 이 작품들 중에서 다시 심사를 하여 5~10 편을 골라 낸 다음 책으로 내는 것이다. 또한 서울시에서 상도 준다. 이주여성들은 관심이 높다. 무료로 작가에게 글쓰기 수업을 받으며, 상도 받고, 저들 나라에서는 뉴스가 될 정도이다.  

그런데 이 수업에도 일산의 청소년 작가캠프처럼 3그룹으로 나뉘어진다. 내가 지도하고 숙제를 내 준 것보다 더 해오는 열정적인 사람들, 과제를 내 준만큼 확실하게 해오는 사람들, 이런 저런 이유로 늘 부족하게 해오는 사람들. 

학생들이나 이주 여성들이나 제대로 못해오는 경우에는 물론 저마다 사연이 있다. 그러나 선생이요,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해오는 사람’에게 마음과 눈길이 가게 된다. 그리고 그 대상이 청소년일 경우에는 ‘너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잘 하겠구나. 네 꿈을 이룰 거야. 그리고 너 때문에 부모님도 주위 사람들도 행복하겠구나’라고 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주여성일 때에는 ‘힘들겠지만 한국에서 뿌리내리고, 무언가 자기 일을 하며 잘 사실 겁니다. 가정도 잘 키워나가겠군요. 축복합니다’ 라며 응원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비록 감옥에 갇힌 몸이지만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부탁하며 당당하게 말한다. ‘형제여(빌레몬을 가리킴),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 즉, 빌레몬이 바울을 부탁에 순종하여 바울에게 기쁨과 평안을 선물할 것을 미리 선포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you will do even more than I ask.)’ 라며 아예 확인 도장까지 찍는 듯한 말을 하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 자신을 위해, 서로를 위하여, 부탁하고 명령한 것보다 “더- even more” 하는 사람. 

내가 손해를 보아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하나님의 일이기에 “더- even more”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어찌 하나님께서 격려하고, 축복해주지 않겠는가. 사람도 그러할진데 말이다. 생각하고, 돌아보고, 찾아보자. 내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더- even more” 해야 할 것, “더- even more”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기도

하나님, 날마다 쫓기고 변명하는 인생이 아니라 “더- even more” 하여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되돌리는 복된 삶 되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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