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물론 사랑하지,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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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물론 사랑하지, 그런데…”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8.11.13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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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봅시다 - 성경이 말하는 사랑

올해 12월 달력을 찢을 즈음 거론되는 10대 뉴스엔 아마 ‘난민’이 빠지지 않을 듯하다. 제주도에 들어온 단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은 5천만 대한민국을 흔들어 놨다. 국가정상도, 할리우드 배우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소수의 외국인이 이렇게 온 나라의 이슈가 된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난민이라는 존재가 낯설었던 한국 사회는 수용 여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하지만 난민이 낯설었던 것은 우리나라뿐, 세계는 이미 십여 년 전부터 난민 문제를 놓고 씨름하고 있었다. 버스 가격을 몰랐다던 한 재벌의 이야기처럼, 빈민가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는 강남 고층 빌딩처럼 우리는 그들과 상관없는 세계에 살았다. 그러고선 굳이 보고 싶지 않은 현실에 애써 고개를 돌리고 있었을 뿐이다.

한국교회는 난민을 품는데 비교적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이견도 있었다. 주로 극단주의 이슬람이 우리나라에 유입될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얼마 전 열린 난민 주제 포럼에서는 사랑하지만 분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내가 책임질 수도 없는 일을 말하며 사랑과 자비, 긍휼을 이야기해선 안 된다. 맹목적인 사랑은 성경도 가르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문득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무슬림 난민에게 우리가 세운 잣대를 들이밀며 누군가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지만 누군가는 아니라고 줄을 세운다. 하지만 이성의 잣대를 들이민다면 우리 중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베푸신 사랑은 언제나 무조건적이었다. 탕자처럼 부끄러운 모습으로 돌아온 우리를 언제나 사랑으로 안으셨다. 세상의 잣대로는 바보 같고 맹목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세상의 사랑은 ‘분별하는 사랑’이다. 이웃은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랑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달랐다. 그분은 세상의 법을 폐하시며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측은한 마음에 건네는 동정도, 내 친구만 아끼는 편애도 아니다. 사랑하기로 했다면 ‘사랑한다’는 서술어로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는 구호함에 천 원짜리 한 장을 던지듯 가볍게 사랑을 말하며 ‘아니 물론 사랑하지, 그런데…’라는 꼬리를 붙이고 있지는 않을까.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와 우리 크리스천들이 세상과 똑같은 사랑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무조건적 사랑을 닮아가기를 소망해본다. 한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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