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기도는 사람을 변화 시킨다

변순복 교수의 유대인의 자녀 교육 (73) 사람을 변화시키는 기도 변순복 교수l승인2018.11.07 17:20:15l13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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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는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를 판단하시도록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놓는 것이 기도라고 가르친다. 또한 유대인 사회에는 기도를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조사하고 테스트하기 위한 기회로 여긴다. 따라서 그들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상태로 더욱 가까이 가려고 노력한다. 다시 말해서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운반해가므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어,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바꾸는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많은 유대인들은 기도의 요점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기도한다는 것이다. 이런 유대인들은 그들이 매일 행하는 기도를 통해서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마치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의무를 수행하는 병사처럼 말이다.

이처럼 유대인들 가운데 기도가 계명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대부분 형식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외식하는 사람들이며 형식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유대인들도 이런 기도가 잘못된 것임을 가르치기 위하여 랍비들이 자주 인용하는 흥미 있는 이야기가 있다. 

‘한 유대인 가정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안식일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한 후에 거실에서 마주 앉아 토론하기 시작하였다. 토론의 주제는 “하나님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이었다. 기도하고 응답을 받은 경험이 없는 아버지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아들은 “거실 창문을 넘어 펼쳐진 자연계의 장엄함을 한 번 바라보세요.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합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다시 말하기를 “아들아 아름다운 자연은 생명이 있기 때문에 아주 진실하게 움직인다.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다음 해를 다시 기약한다. 자연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한다. 우리가 기대하고 가꾼 대로 우리에게 열매를 준다. 하지만 우리는 너의 어머니가 병 들었을 때, 다시 한 번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간절하게 열심히 기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의 어머니를 살려주시지 않았다. 그러니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 아니며, 존재하지도 않는다.” 아들이 다시 말하였다. 

“아버지! 우리는 어머니가 어디에 계시는 것이, 우리 어머니에게 가장 좋은 것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 어머니가 어디에 계시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인지 우리보다, 특별히 우리 어머니 보다 더 정확하게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어머니가 가장 행복해 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머니를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옮겨 가시는 것이, 아버지에게 그리고 나에게, 특별히 어머니에게 가장 좋다는 것을 아시고 옮기신 것입니다.” 

아들과 열띤 토론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시계를 쳐다보시더니 말했다. “아들아! 저녁 예배와 기도할 시간이다. 회당에 서둘러가자. 잘못하면 늦겠구나! 우리에게 주어진 계명을 완전히 수행하고 난 후에 토론을 계속하자꾸나!” 아들이 말을 이었다. “아버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서요. 그런데 왜 회당에 가서 예배하고 기도해야하나요?” 아버지가 급하게 말하였다. “아들아! 계명은 완수해야하지 않겠니”하며 서둘러 회당으로 갔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은 크다고 본다.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를 가진 많은 사람들도 이처럼 기도한다.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부류의 사람을 향하여, ‘외식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가 함께 성전에 올라가 기도한 내용을 읽을 수 있다(눅 18:10-14).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의를 마음껏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지금 자기 앞에 서서 자기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면 과연 그렇게 기도할 수 있었을까? 반면에 세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기 앞에 서계심을 믿기 때문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마음 조아리며, 그저 죄인이로소이다만 외치고 있다. 

여기서 바리새인은 계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기도하였지만, 세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도하였다. 그 때 하나님은 그를 변화시켜 의롭다 칭하여 주셨다. 할렐루야! 

변순복 교수  igoodnews@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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