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의 뿌리: 67조 해설(1523년)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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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의 뿌리: 67조 해설(1523년)17
  • 주도홍 교수
  • 승인 2018.11.0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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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홍 교수의 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

용병제도에 관하여

츠빙글리는 취리히의 용병제도에 대해 분명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츠빙글리는 취리히의 무고한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보내 피를 흘리게 하면서까지 외국의 돈을 벌어들이는 행위는 정의롭지 않기에, 교황의 권력이나 교회의 권력에 맞서서라도 용병협정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확고히 견지했다. 츠빙글리의 입장은 첫째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며, 자신의 조국 스위스를 가슴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츠빙글리는 기꺼이 그리스도의 가난을 택하고, 교황의 막강한 권력과 화려함을 거부하였기 때문이었다. 38조는 통치자의 폭정에 대해 말한다. 

“만약 권력자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을 명령할 경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보다 하나님에게 더 복종하는 것입니다(행5:20). 그러나 특별히 그리스도를 믿는 영주들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을 명령해서는 안 됩니다.”(츠빙글리, 『저작 선집 2』, 384) 

특히 루터의 종교개혁에 반대하여 “적그리스도적인 교황추종자들”인 세상 권력자들이 취한 행동을 폭정으로 규정한다. 아무리 바르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들은 “루터의 복음” 또는 “루터적”이라 비난하면서 모든 힘을 다해 박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츠빙글리는 자신이 전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루터의 복음”으로 부르는 것을 기꺼이 하지 않았다. 츠빙글리는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폭군의 미친 짓”을 “그리스도의 담대한 용사들이 ... 세상의 악과 폭력을 ... 몸으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딤후2:3). 당시 로마교회에 반기를 들고, 로마교회 추종자 영주들의 반대편에 서야만 했던 종교개혁자 츠빙글리는 자신에게 닥친 위험이 죽음의 문턱까지 가까이 왔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바른 통치자

39조는 악한 군주들이 불법을 자행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행5:29). 기독교인 군주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법의 통치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문제는 사람들이 망가진 자연 속에 살면서 “절반의 정의”를 실천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통치자는 악을 쳐부수며, 탐욕을 저지르고 있는 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딤전1:8~11).

권력자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악인’으로서 최악을 막는 자로서 존재한다. 츠빙글리는 복음의 원리에서 다스려지는 기독교 국가를 가장 이상적인 국가로 제시한다. 츠빙글리가 말하는 바른 통치자는 몇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간의 정의를 찾는다. 둘째, 인간의 법을 하나님의 말씀에 상응하는 법으로 만든다. 셋째, 자신을 그 정당한 법에 의해 악한 자를 처벌하는 자로 인식한다. 넷째, 믿는 자들을 형제처럼 대해주며, 불의에서 보호한다. 다섯째, 잘못된 믿음과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그들의 영혼을 돌본다(히13:17; 벧전5:1~3). 츠빙글리의 이해는 성직자와 통치자의 업무에 있어서 공통점을 가진다. 롬13:3~4를 인용하며, 츠빙글리는 통치자를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사람”으로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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