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 병역기피 수단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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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 병역기피 수단 우려된다”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8.11.0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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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거부자 99% ‘여호와의증인’ 신도...사실상 종교적 거부
반대 국민청원 사흘만에 4백건 이상...국민적 박탈감 상당해
한기연·한기총 등 “대법원 무책임”...교회협 인권센터 “환영”

헌법재판소가 지난 6월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처벌에 대해 헌법불합치라고 판단한 데 이어 대법원마저 무죄 취지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일 ‘여호와의증인’ 신도 A씨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방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대법원은 2004년과 2007년 판단을 뒤집고 이번에 판례를 변경한 것.

대법원은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안에서 병역의무 이행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제재를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비롯한 헌법상 기본권 보장체계와 전체 법질서에 비춰 타당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되므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병역법 제88조 제1항은 현역입영 거부 행위에 대해 3년 이하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앞으로 특정 종교적 사유라 하더라도 처벌받지 않을 것이다.

▲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일 병역의무를 거부한 여호와의증인 신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 판결에 이은 대법원 판단에 대해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사진=대법원 선고영상 갈무리

여호와의증인 한국지부는 즉각 논평을 내고 “오늘 판결은 지난 65년 동안 전과자로서 온갖 불이익을 견뎌온 2만명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과 가족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며, 선량한 젊은이들의 군과 무관하고 자신의 양심에 반하지 않으면서 국제표준에 부합하는 민간대체 복무를 통해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고 환영 입장을 나타냈다.

여호와의증인은 19세기 미국에서 출현한 기독교계 이단 종파로,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등을 이유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등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이 이단으로 결의하고 있다.

실제 유럽 등과 달리 국내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주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로 이뤄져 있다는 점에서는 우려도 적지 않다. 2004년~2013년 병무청 통계를 보면 병역 거부자 6164명 중 6118명이 여호와의 신도들로, 무려 99.2%에 달하기 때문이다.

대체복무제가 검토되고 있지만 양심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으로, 이번 판결이 양심적 병역거부가 아니라 사실상 종교적 병역거부에 적용될 소지가 높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청원만도 3일 오전 현재 420건이 넘었다. 대법원 판결 관련 기사에도 비판 내용이 대다수였다.

대부분의 내용은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분노와 같은 것이며, 심지 ‘양심적 납세거부를 하겠다’거나 ‘군필자는 비양심적이지 않다’, ‘헌법에서 국방의 의무를 제외해야 한다’ 등의 내용으로 반발하면서 심지어 ‘여호와의증인을 지뢰제거 투입하라’는 등의 감정적 반응들도 적지 않았다.

▲ 대법원 판결 이후 지난 1일 이후 3일 오전까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반대 청원이 4백건 이상 올라와 국민적 반감이 높아지고 있다.

진보 성향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소장:박승렬 목사)는 “이 판결은 우리 사회 존재하는 다양한 양심적 신념을 존중하고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하는 옳은 결정”이라고 환영 입장을 밝혔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다양한 양심적 신념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다. 보수 성향의 기독교계 단체들은 대법원 판단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기독교연합(대표회장:이동석 목사)는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안보 현실을 무시한 판결로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해석을 낳을 우려가 생겨났으며, 대체복무는 애국심을 양심으로 둔갑시킨 사람들에게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기연은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심사를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내면서 판결에 대한 책임과 뒷수습은 징병 심사기관에 떠넘겼으며, 소수 인권이 다시 인권을 함부로 침해하고 공공의 안녕과 이익이 소수에 의해 침해될 수 있는 사각지대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한기연은 “병역문제 뿐 아니라 납세 등 다른 국민의 의무까지 확대돼 인권이나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국민 불복종운동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엄기호 목사)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부과된 국방의 의무를 개인적인 이유로 거부할 수 있도록 법원 스스로 법질서를 무너뜨린 결과를 초래했다”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법원이 제시한 양심의 기준마저 애매모호한 것이며 재판 당일에 따라 좌지우지 될 수 있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기총은 “불명확한 근거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기보다 징집제를 모병제를 바꾸는 국가적 논의와 헌법 개정 후에 사법부가 판단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었을 것”이라며 “사법부로 인해 병역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허무함, 이행해야 할 청년들에게는 병역의무를 피해갈 꼼수를 알려준 꼴”이라고 비판했다.

바른군인권연구소 김영길 대표는 “대한민국 대법원 판결이기에 존중하지 않을 수 없지만, 현재 최선을 다해 군복무하는 현역 장병과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 받을 상대적 박탈감이 클 것이며, 국방경시 풍조가 만연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 판결에 따라 제도를 보완해 2020년이면 대체복무제는 시행되어야 한다. 교회협 인권센터가 “남은 과제는 실질적인 대체복무제를 실현해야 하며, 대체복무가 징벌적 성격이 아닌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며 현역 복무 형평성에 맞는 복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익대학교 음선필 교수는 "국내 병역거부자 대다수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며 병역거부는 양심이 아닌 종교의 영역에 해당한다"며 "전투병과 복무자를 위한 보상제도가 필요하는 한편, 대체복무자를 판단할 수 있는 공정성과 형평성을 담보할 제도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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