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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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사명’이다
  • 김종생 목사
  • 승인 2018.10.2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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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생 목사/글로벌 디아코니아

새로 등록한 가족을 심방하는데 우리 교회는 사랑이 없다, 기도가 부족하다, 찬양이 부족하다, 전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봉사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지적하는 이야기가 틀리지 않기에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동의했다. 그러면서 당신에게 그것이 문제라고 여겨졌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하라고 하나님이 당신을 보내신 것 같아 참 감사하다고 전했다.

추수할 곡식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이 부족하다며 추수할 일군을 보내달라는 이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추수할 곡식이 보이는 사람은 추수할 일군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문제투성이다. 아니 죄인인 우리가 사는 이 땅은 문제투성이 일 수밖에 없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의 연륜을 쌓으며 드는 생각이 있다.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문제투성이지만 우리로 하여금 지금, 여기를 살도록 하신 하나님은 이 문제를 나의 과제로 인식하고 내가 풀어가야 할 하늘의 사명으로 인식하며 살아가라고 준엄하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주변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남의 이야기 하듯 한다. 나와는 무관하다고 여길 뿐만 아니라 어느새 심판자로 서 있는 것 같이 말이다. 신사참배의 문제는 신앙의 선배들이 저지른 죄악이기에 선배들의 실수를 지적하면 그것으로 면피된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의 지나친 개교회주의나, 교회성장이 주님보다 앞선 가치가 되어 있는 현실을 향해서나, 사회와 별반 다를게 없는 세속화 특히 돈에 집착하는 문제나, 사회적 약자를 돌보지 않고 주어진 축복을 교회안에서만 나누는 행태에 대해서도 그저 돌을 던지고만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말 신사참배는 오늘을 사는 우리와는 무관한 것일까? 신사참배를 회개하는 자리에서 의례적인 죄의 고백으로 우리의 회개는 끝나는 것일까?

신사에 참배하도록 했던 그 상황은 사라졌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성장이라는 신사와 돈이라는 신사로 이름을 바꾸고 주님의 사랑과 정의가 아닌 자기의 판단과 의로움으로 돌을 던지고만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간음한 여인조차도 살리려 하셨던 주님의 긍휼하심은 어디서도 찾기 힘든 한국교회가 되고 말았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책임을 서로 전가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죄는 우리로 하여금 내 책임이 아니라고 “내가 아벨을 지키는 자”냐고 항변하도록 추동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거라사의 공동묘지에서 자신을 괴롭히고 주변을 불편하게 만드는 흉악한 귀신들린 사람에게 다가가서 “당신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분노하는 이에게 우리 주님은 상관이 있다고 조용히 입증하셨다.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을 우리 공동체에서 도려내고 배제하면 끝나는 방식이 아니셨던 것이다.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며 그를 품에 안음으로 당시 자기 의로 살아가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로부터 버림받으신 주님이셨다. 네 탓이라고 문제를 보고 너 때문이라고 돌을 던지는 것으로 풀리지 않기에 우리 주님은 몸소 당신이 십자가를 지면서 문제를 풀고 죄인을 살리는 방식을 보여주셨다.

지금 여기 우리에게 문제로 보이는 것들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과제가 되어 우리 모두의 사명으로 고백할 수 있을 때 나 자신은 물론 우리에게 주신 한국교회 공동체는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과제로 문제를 사명으로 인식하는 우리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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