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대통령, 재벌보다 소중한 내 백성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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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대통령, 재벌보다 소중한 내 백성들이여!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8.10.2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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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64
▲ 니콜라 푸생, <홍해 건너기>중 일부, 1634년

에스겔 45:8-9> 땅을 왕에게 돌려 이스라엘 가운데에 기업으로 삼게 하면 나의 왕들이 다시는 내 백성을 압제하지 아니하리라 ... 중략 ...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아 너희에게 만족하니라 너희는 포악과 겁탈을 제거하여 버리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내 백성에게 속여 빼앗는 것을 그칠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PC방에서 종업원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순식간에 흉기를 휘두른 것이다. 내가 아는 한(뉴스를 통해서) ‘무시당한 것 같아서’ ‘나를 보고 비웃는 것 같아서’ ‘막말을 해서’ 심지어는 ‘반말을 해서’나 ‘지나다가 어깨를 부딪혀서’ 등등 사소한 이유로 대한민국은 날마다 주먹과 물건을 던지고, 흉기를 휘두르고 있다. 

이러한 사건의 피해자와 피의자는 대부분 서민들이다. 약자들이 약자를 무시하고, 때리고, 죽이는 것이다. 허긴 부자들이나 권력있는 사람들, 많이 배워서 사회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을 그 누가 무시하겠는가. 그 사람들에게 누가 반말을 하고, 어깨를 부딪혔을 때에 모른 척 하고 지나치겠는가.

내가 이러한 사건의 피의자들의 자라온 과정을 뉴스에서나마 살펴본 결과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순탄치 않았다. 깨어진 가정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나는 저절로 상상이 되었다. 어린 나이 때부터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서도 지지나 보호를 받지 못하며 무시당하고 설움을 많이 겪었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의 여러 장벽 앞에서 좌절하고, 무시당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의 병폐 중에서도 가장 악독한 병폐인 쥐꼬리만한 돈이나 권력이라도 있으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갑질병’(예전의 ‘양반병’이 그 뿌리라고 해야 하나?)에 온 마음과 영혼마저 병든 것이다. -물론 끔직한 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변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회 풍토 속에서 힘 있는 사람들이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러도 꿋꿋하게(?) 번창(?)하는 것을 보면 마음은 점점 무슨 색깔로 변하게 될까? 평소 정의공의를 외치는 정치인들마다 청문회 자리에서 속속히 드러나는 검은 죄목들. 그러다보니 이제는 위장전입이나 투기, 자녀들의 군대문제 따위는 위법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 정도이니! 오죽하면 어떤 피의자는 ‘힘 있는 사람들은 무슨 잘못을 해도 내가 어찌 할 수가 없고, 내 주위에서 나를 건드는 사람이라도 내가 응징해야 내 분노와 억울함이 풀릴 것 같아!’ 라는 말까지 하겠는가. 

권력자들이,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물질 넉넉한 사람들이 즉 ‘왕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는 자식이 어리다고, 새부모는 남의 자식이라고,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종업원이 한 명 뿐일 정도로 작은 가게라도 업주라고 알바생을, 좀 미모가 있다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외제차주는 국산 경차 탄 사람을, 돈 좀 있는 친척은 가난한 친척을, 대기업 직원은 하청업체 사람들을, 원장은 유치원생들을... ... 무언가 두 손 가득히 쥐고 있으면 오른 손에 정의, 왼 손에 공의를 쥘 수 없는 가 보다.

에스겔서 45장의 말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기원전 600-700년 때나 21세기인 지금이나 어쩌면 상황이 다르지 않은지.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괴롭히지 말라며 통곡하시는 것 같았다. 마치 아들이 가난한 집안인데다가 몸도 약하고 공부도 변변치 않아서 동네 아이들에게 만날 놀림을 당하고, 맞고, 심부름질에 시달리는 것을 보며 눈물을 쏟는 아비같은 심정이다. 그래서 ‘통치자들’과 ‘왕’에게 눈물로 호소하시는 말씀처럼 들린다.

어느 목사님의 ‘모세가 반석을 두 번 내리치며 분노를 터뜨려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니다. 원망하며 울고불고 하는 백성들이 미련하고 못났다고 여겨 그들에게 화를 낸 모세의 심정(마음의 동기)에 대해 하나님께서 노하신 것이다.’ 라는 설교가 생각났다. 그때에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정도로 여겼는데, 에스겔 선지자의 글을 읽으며 새삼 강하게 공감되었다. 

우리가 ‘아버지!’ 라고 부르며 기도하고, 찾고, 의지하고, 떼를 쓰며, 말도 안 되는 원망도  하고, 죽기 살기로 매달리기도 하는 하나님. 하나님 역시 우리들에게 그러하실 것이다. ‘애야!’ ‘이눔아!’ ‘우쭈주, 내 귀여운 강아지!’ 또는 ‘에그 이 웬수야...’ ‘꼭 너같은 자식 낳아서 내 마음이 어떤지 당해보라.’ 하시다가도 ‘너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사니?’하실 것 같은 하나님 아버지.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 그 누구도 왕의 이름으로, 재벌의 명함으로, 학벌의 잣대로 함부로 우리를 대할 수 없다. 아니,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진노하신 것처럼 진노하시리라는 것을 그들이 깨닫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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