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보다 더 든든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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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보다 더 든든한 남자?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8.10.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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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63
▲ 하인리히 호프만, 그리스도와 부자 청년, 1889년

출애굽기33:3-4>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이번 추석 연휴 때, 친척들의 모임에서 주인공은 A였다. 그녀는 이혼 뒤, 딸과 함께 힘들게 살았다. 그러다가 5년 전 딸을 시집보내고 혼자서 몸을 아끼지 않고 일을 하며, 세례도 받지 않은 채, 주일 예배드리는 것만으로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쉰 중반이 넘도록 물질의 어려움을 혹처럼 달고 사는 바람에 웃음이 없다. 물론 그녀가 예수님을 좀 더 깊이 만났다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이혼했다 하여 우울을 혹처럼 달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추석 때에 그녀는 예전보다 밝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남친이 생겼대!’ 친척들이 웃으며 말했다. ‘역시 여자는 남자가 있어야 해.’ 이렇게 시작된 소곤거림은 점점 웃음과 함께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그녀에게 대놓고 질문을 했다. 남자가 몇 살이냐? 언제부터 만났냐? 결혼계획은 있는가?…그러나 친척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그 남자의 경제능력’ 이었다. 조그만 개인사업을 하는 남자는 부인과 사별 뒤 대학원생인 딸을 키우며 큰 걱정없이 살고 있다는 말에 친척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저마다 무슨 판결을 내리듯 한마디씩 했다. 

‘그동안 고생많이 했는데 다행이다.’ ‘이제 고생 끝이네.’ ‘남자가 경제적 능력이 있어서 다행이네.’ ‘네 나이에 돈 없는 남자 만나면 그게 지옥이지. 만약 그런 남자라면 내가 뭔 짓을 해서라도 뜯어 말리려고 했어.’ ‘그들의 판결 역시 ‘그 남자의 경제능력’이었다.

친척들도 거의 기독인들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 남자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니?’ ‘교회 다니는 남자니?’ 라고 묻지 않았다. 나는 답답한 나머지 권사님이신 그녀의 어머니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남자 친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요?’ 권사님은 ‘뭐 다니겠지. 지금 그게 중요한가? 일단 사람 좋고 경제 능력 있어야지. 재혼할 지도 모르는데..’ 당황한 내가 다시 물었다. ‘A한테 물어보지 않았어요?’ ‘아무리 딸이라도 그런 걸 내가 어떻게 물어봐? 사생활을…만약 그 남자가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라면 A가 힘들어할지도 모르잖아’   

순간, 화가 올랐지만 얼른 다스렸다. ‘여든 넘은 데다가 역시 오랜 세월 혼자 사신 권사님이시니 이해하자.’ 그리고 다시 한 번 권사님에게 말했다. ‘한 번만 물어봐주세요.’ 내가 활짝  웃으며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자, 권사님은 딸에게 물었다. 그러나 마치 수치스러운 질문을 하는 양 작고, 작고, 작은 목소리였다. ‘A야, 그 사람 교회 다니니?’ 조카들과 이야기를 하던 A는 한번 고개를 젓고는 다시 조카들과 웃고 떠들었다.

권사님은 마치 A의 변호자처럼 나에게 말했다. ‘A가 알아서 전도시키겠지.’ 그게 다였다. 그리고 부록처럼 붙여서 말했다. ‘저번에 아파트로 이사할 때에도 그 사람이 돈을 줘서 고생 안 했대. 그리고 이번에도 추석이라고 나한테 돈을 보내고, 선물도 했어. 이 정도면 웬만한 교인들보다 낫지 않아?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서로 이용하려고만 하잖아.’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집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걸었다. 친척의 집은 아파트이지만 주변에 작은 산이 있어 산책하기 아주 좋은 곳이다. 추석 당일 오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산길을 걷고 있었다. 부부들,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 그리고 아이들끼리만 몰려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웃음소리, 즐거운 비명소리, 추석 날 오후의 산 속은 풍성한 먹거리로 신이 난 동물들의 잔치처럼 시끌법적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추석인데도 먹을 것이 없고, 집이 없고, 병들었다면 웃기는커녕 통곡을 하겠지... 이 사람들 속에 기독인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그들도 무언가 결핍된 상태라면 울고만 있을까? 그러다가 능력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가 불신자라도 도움을 준다면 단박에 행복의 미소를 지을까? 주일마다 교회를 가고, 늘 우울했던 A가 한 남자로 인해 당당하고 얼굴 가득 행복의 미소를 짓고 나타난 것처럼. 그렇다면 예수님은 뭐지? 아파트, 돈, 옷, 먹을 것, 병, 이혼 같은 것들이 해결되기 전에는 예수님은 결코 우리에게 어떤 기쁨과 당당함과 편안함의 근거는 될 수 없다는 말인가? 힘 있는 한 사람 앞에서 예수님은 그저 귀걸이나 목걸이 용도의 장식품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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