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법칙은 힘으로 세상을 무릎 꿇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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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법칙은 힘으로 세상을 무릎 꿇리지 않는다
  • 임석순 목사
  • 승인 2018.10.1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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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순 목사/한국중앙교회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높아지고 커지고 많은 것을 소유하기 원합니다. 그것을 성공이라 여기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래서 성공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교회마저 ‘어떻게 하면 사람을 모으고 성전을 더 크게 지을까?’만 생각하는 오늘날입니다. 그런데 뭔가 성취하는 기술도 중요하겠지만 내려놓는 기술은 더욱 중요합니다. 가장 훌륭한 기술 가장 배우기 어려운 기술은 내려가는 기술 입니다. 올라갔으면 잘 내려와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성공입니다.

잘 내려오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어느 직이든 그 자리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잘 내려오는 것입니다. 주어진 일에 24시간 헌신하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닙니다. 책임을 따라 사는 것은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는 것입니다. 내려오는 일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그에 반응하기 위해 매일 매순간 싸워야 합니다. 이 싸움이 있을 때 우리는 잘 내려올 수 있고 생명의 역사도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을 먹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질병을 치유하신 예수님이 자신들의 왕이 되리라 확신했기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 앞에 겉옷을 벗어서 길에 펴고 호산나를 외치며 열광하며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왕으로 통치할 것이란 확신이 없다면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그 만큼 주님은 모든 능력을 소유하신 분이었고 말을 타실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말을 타지 않으시고 나귀를 타셨습니다. 백마까지도 타실 수 있는 예수님이 왜 말에서 내려와 나귀를 타셨을까요?

나귀를 단순하게 겸손의 상징으로 말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곧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뿐만 아니라 이 땅에 오시면서부터 말에서 내려와 나귀를 타셨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끊임없이 말에서 내려와 나귀를 타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겸손의 절정은 십자가였습니다. 말을 탈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갖추신 주님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응하여 말에서 내려와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거기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늘의 법칙은 힘으로 세상을 무릎 꿇리지 않습니다. 말에서 내려와 나귀를 타심으로 예수의 이름 앞에 모두가 무릎 꿇게 될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말에서 내려와 나귀를 타신 주님으로 인하여 우리가 말을 탈 수 있는 신분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잠시 사는 동안 우리도 예수님처럼 말에서 내려와 나귀를 타야합니다.

나귀를 타는 것이 가지고 있는 소유를 버리고, 앉아 있는 직을 내려놓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것들을 누리고 있는 지금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무릎을 꿇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삶이 나귀를 타는 삶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어떤 일에 부딪힐 때마다 말에서 내려와 나귀를 타야 합니다. 즉 나의 생각과 기준에서 내려와 하나님의 생각과 기준으로 가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 한국 교회가 세상의 법칙에서  하늘의 법칙을  살아내는 야성의 영성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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