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의 신앙정신, 복음 통일을 위해 뒤따라야”

사랑의교회-한중교류재단, 지난 5일 학술대회 개최...'대한민국임시정부와 기독교' 이인창 기자l승인2018.09.13 14:33:46l수정2018.09.13 15:07l14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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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 中>

대한민국 건국의 출발점이자 뿌리가 되는 임시정부.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1948년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헌법 전문에서는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별히 독립운동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펼쳤던 수많은 업적 중 임시정부 수립에 있어서 혁혁한 공은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교회 창립 40주년을 맞은 사랑의교회가 한중국제교류재단과 함께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기독교’를 주제로 지난 5일 국립고궁박물관 별관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학술대회에서는 임시정부에서 기독교의 역할과 현재적 의미에 대해 다뤄졌다. 

▲ 한중국제교류재단이 지난 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기독교'를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

3·1운동과 임시정부 밀접한 관계
의병정신선양회 오일환 회장(보훈교육연구원 전 원장)은 “기독교 정신으로 각성되고 서방의 문물과 제도에 눈을 뜬 기독교인들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면서 민주공화정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 민족국가 건설을 이상으로 삼았고 이를 구현하고자 했다”며 “이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하는 귀중한 동력이 되었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잘 증명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은 1919년 3·1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독립선언서에서 독립국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은 임시정부를 세우겠다는 천명이나 다름없었다. 임시정부는 당연히 독립운동의 중심이 되어야 했고, 3·1운동 이후 구체화 되었다. 
실제로 1919년 3월 17일 연해주 지역에서 만들어진 ‘대한국민의회’, 같은 해 4월 11일 상해에서 신한청년당이 중심이 되어 수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 4월 23일 서울에서 13개 도 대표 24명이 모여 수립한 ‘한성정부’가 대표적이다. 세 임시정부는 그 해 9월 상해에서 통합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출범하며 유일한 망명 정부로서 역할을 하게 됐다. 

통합 임시정부는 임시헌법을 채택하고 3권 분립 민주공화제 정부를 출범했으며, 독립적인 활동이 보장됐던 상해 프랑스 조계에 만들어졌다.

연세대 김명섭 교수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군대를 보유하지 못한 임시정부는 외교독립운동 노선을 불가피하게 선택했고 상해 프랑스 조계는 그 노선을 위해 적합한 국제 공간이었고, 프랑스 조계 당국도 국제조약을 근거로 임정을 보호해 주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임시정부는 독립신문을 발행하고, 1차 세계대전 후속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에 특사단을 파견해 ‘독립청원서’를 각국 대표들에게 전달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무장투쟁을 위한 기반과 체계도 만들었다. 

기독교인, 통합 임시정부 맹활약
특히 주목할 점은 대한민국임시정부 내의 기독인 지도자들이다. 임시정부 통합을 이끌었던 안창호와 대통령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가 모두 신앙인이었다.

임정 요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가장 많았다. 임시의정원 제1 회의에 참석한 29명 의원 가운데 여운영, 이회영, 손정도 등 11명(38%)이 기독교인 이었다. 이중 5명은 상동교회 청년회 출신이었다. 통합 이후 임정 행정부 요인 10명 가운데 6명(60%)이 기독교인이었다. 1914년 설립된 상해한인교회는 기독인 임정 요인들의 중요한 회합장소였다. 

기독여성들은 국내외 각지에서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해 대표를 상해임시정부에 파견 했으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독립운동가를 지원했다. 

숭실대 김명배 교수는 “일제의 무단통치 가운데 교회는 민족운동의 유일한 공간이요 은신처였다. 국권을 상실해 절망하던 사람들은 무수히 교회에 들어와 신앙을 통한 국권회복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고 신앙인들의 역사적 참여배경을 설명했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몽양 여운형, 감리교 목사 현순, 기독교 민족주의자 안창호, 안창호의 든든한 조력자 차리석 등은 임시정부에서 기독교 신앙을 끝까지 지키며 독립운동을 펼친 대표적 기독교인이었다.

만주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기독교인 여걸 남자현과 65세 나이에 조선 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에게 폭탄을 투척한 강우규 역시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수원대 박환 교수는 “당시 동아일보는 종로구치감 말을 인용해 강우규는 감옥에서 항상 성경읽기로 일을 삼고 아침저녁으로 무슨 묵도가 있으며, 아무 근심하는 빛이 없이 지낸다고 보도했다”며 “그는 죽기 전 조선청년의 교육을 강조하며 기독 청년들이 향할 곳은 기독교이니 먼저 기독교를 믿어서 심령을 맑게 한 후 공부해야 한다고 유언했다”고 전했다. 

통일한국도 기독교인들이 중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에 있어 기독교 신앙선배들의 자랑스러운 전통은 역사로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특히 분단현실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위해 적용할 가치를 찾을 수 있다. 

평화한국 허문영 대표(통일선교아카데미 원장)은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친미파 이승만 대통령, 친소파 이동휘 국무총리, 민족주의 김구, 사회주의 여운형 등 대표적인 기독교인들이 함께했고,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국호 대한민국과 애국가, 태극기, 무궁화 모두 당시 제정된 것”이라며 “통일 대한민국도 기독교인들이 중심에서 서서 사랑과 희생으로 섬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문영 박사는 “민족의 숙원이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냉전체제를 넘어 ‘통일 3.0 패러다임’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라고 제안하며 “통일 3.0패러다임은 평화대국 건설을 목표로 복음과 섬김, 연합, 교육, 평화, 젊음, 기도의 정신을 펼쳤던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 박사는 “평화대한민국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1단계 평화지키기, 2단계 평화만들기, 3단계 평화키우기, 4단계 평화나누기, 5단계 평화섬기기로 과거체제를 극복하고 평화통일 이뤄야 하며 무엇보다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야만 복음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오일환 회장은 “대한민국이 독립이 되자마자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임시정부가 추구한 근대 민족국가는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완전한 독립은 민족통일을 통해서 완성될 수 있다”며 “임시정부가 내부통합 과정을 거쳐 수립될 수 있었던 것처럼 보수와 지보의 진영논리에 갇혀 자기주장만 한다면 남북관계 진전도 통일도 더 멀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 회장은 “한국교회가 특정이념이나 정치적 관점에 매몰되지 말고, 복음에 입각해 인식하고 대화하는 습관을 가져야 복음적 평화통일의 길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며 “임시정부 통합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보인 리더십을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보여주길 소망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인창 기자  tackle21@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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