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

방효성의 성지를 찾아서 (68) 방효성 작가l승인2018.09.11 02:05:13l수정2018.09.11 02:05l14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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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효성- 종말론의 그림자 52x79cm Acrlyci on paper.2018

미국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교회 앞에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구걸하는 걸인이 있었다. 그로 인해 교회를 출입하는 성도들은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교인들은 그냥 지나치기도 그렇고 통행세처럼 늘 몇푼씩 주는 것에도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구걸하는 자리에는 팻말이 있었다. 내용은 ‘집도 없는 걸인입니다. 적선 하십시오’ 라고 적혀 있었다. 교회직원이 설득을 시도했다. 자리를 좀 옮겨주시겠습니까? 교회를 찾는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는 구걸행위를 그만 해달라고 달래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무슨일인지 교인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걸인의 수입이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팻말이 바뀐 후 부터였다. 이렇게 써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모아지면 집을 살 수 가 있습니다. 그러면 곧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아쉬운 것은 그 걸인이 교회 앞에서 구걸을 했지만  누구도 그 걸인을 전도의 대상으로 보지 못하고 구제의 대상으로 봤다는 것이다. 

교회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웃과 사회를 섬기고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 속에 강도 당한 자를 긍휼한 마음으로 거두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강도 당한 사람의 이웃은 누구겠냐고 물으신다.  

약자를 돕고 이웃을 위하여 봉사하는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큰 역할을 감당해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전도해야할 대상을 우리 스스로 가리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물질 제일주의는 초대교회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당시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오직 나사렛 예수님의 능력으로 구원하였음을 볼 수 있다. 구제는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이 빠진 구제와 봉사의 행위는 세상과 같은 긍휼한 섬김에 지나지 않는다. 선한 모든 행위의 끝은 영혼구원의 사명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방효성 작가  igoodnews@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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