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의 핵심은 ‘이별과 상실’…아픔 돌봐야죠”

해외 입양인 센터 ‘뿌리의 집’ 김도현 목사 김수연 기자l승인2018.09.11 01:54:31l수정2018.09.14 17:34l14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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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 운영…모국 방문한 입양인들 지원 
미혼모 지원 및 입양특례법 개정…인권보호도 ‘복음’

▲ 뿌리의 집 원장 김도현 목사.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에 위치한 3층짜리 벽돌집. 활짝 열린 대문을 들어서자 푸르른 녹음에 아담한 마당이 펼쳐지는 이곳은 해마다 해외 입양인 300명가량이 머무르는 게스트하우스 ‘뿌리의 집’이다. 입양의 본질을 아이와 생모의 이별로 볼 때, 평생 상실의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안식처가 돼주는 뿌리의 집 원장 김도현 목사(65세·익수스교회)를 만나 한국은 왜 이토록 해외 입양을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함께 들어봤다. 

입양인 향한 ‘환대의 마음’
2003년 7월 문을 연 뿌리의 집은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크게 네 가지 일을 한다. 그 중 가장 기본사업은 해외 입양인들의 모국 방문을 지원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것. 하룻밤에 1만5천원~2만원 숙박비를 받긴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할 경우 공짜로도 방을 내준다. 삼시세끼 따끈한 밥은 물론 우리말이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 통번역·집구하기·가족 찾기 등 한국생활 전반에 필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명절엔 입양인 80여명이 모여 잔치도 벌인다. 

이 밖에도 뿌리의 집은 해외 입양인과 미혼모의 권익을 옹호하는 시민단체 역할과 더불어 관련 책을 펴내는 출판사와 뿌리의 집 활동을 학문적·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소 운영을 병행한다. 이를 통해 입양한 어머니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나를 닮은 얼굴’을 제작하기도. “뿌리의 집은 모국을 찾는 입양인들에게 ‘집 떠난 곳의 집’입니다. 동시에 그들의 목소리가 우리사회에 더 크게 울려 퍼지도록 만드는 ‘소리통’이기도 하죠. 많은 입양인들이 여기서 지내면서 한국을 좀 더 알아가고 친가족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김 목사가 처음 입양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때는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서 새문안교회 부목사 사역을 접고 스위스로 건너가 개신교단의 한국담당 목사로 목회하던 그는 바젤지역 상류층 가정에 입양된 한국계 여성의 자살사건을 접하면서 입양문제에 눈을 떴다. 이후 스위스에 사는 한국계 입양인들과 인연을 맺고 9년간 동고동락하면서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에 상처받는 이들의 외로움, 정체성에 대한 고민, 그리고 친생모와의 헤어짐으로 인해 생기는 말 못할 고통을 목도했다.

“가난했던 시절 아이만이라도 잘 먹고 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생이별 했는데 새 가정에서의 풍족한 생활은 입양인에게 결코 친부모의 품을 대신해주지 못하다는 걸 배웠어요. 입양은 ‘복리후생’이라 여기기 전 먼저 ‘이별과 상실’의 문제란 걸 깨달은 거죠. 아무리 좋은 대학·직장에 들어가도 결별의 당사자인 친생모와 입양인의 아픔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더군요.”

그는 자연스레 한국에서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친생모의 현실로도 시선을 옮겼다. 이후 영국서 3년간 유학하면서 한국이 ‘아기 수출국’이란 오명을 얻을 만큼 해외 입양을 활발히 한 배경을 연구하는데 골몰했다. 그 결과 ‘국제간 아동입양과 한국의 친생모’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이는 2004년 뿌리의 집 설립자인 김길자 전 경인여자대학교 총장으로부터 운영부탁을 받아 귀국, 본격적으로 한국의 입양문제 해결에 뛰어든 밑거름이 됐다.

▲ 뿌리의 집이 추석을 맞아 해외 입양인들을 게스트하우스로 초대해 잔치를 벌이고 있다.

입양 당사자들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
6.25전쟁 직후 시작된 우리나라의 해외 입양은 현재 25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쟁이 빚은 빈곤·혼혈가정 아동부터 70~80년대 산업화에 따른 극빈가정 아동들이 그대로 해외로 떠밀려 간 것. 이 과정에서 뿌리의 집은 특히 한국의 가부장제와 서구우월주의에 의한 편견과 경제적 장벽에 부딪혀 아이를 책임질 수 없었던 미혼모들의 열악한 양육환경에 주목했다.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살 권리를 박탈당하는 잔인한 사회가 아니라 더 많은 아동들이 친부모의 품에서 환대받고 성장하도록 돕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낮은 자를 섬기신 예수님처럼 사각지대에 있는 약자를 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더욱이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입양해도 100% 더 나은 삶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입양은 로또 같아요. 올바른 가정을 만나지 못할 경우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받을 위험이 있고 그러다보면 알코올 중독 등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죠.” 입양인들이 한국에 와도 형편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낯선 문화와 언어에 적응하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겉돌기 일쑤인 것. “무엇보다 우리는 그들을 ‘재한국화’ 하려는 태도를 고쳐야 합니다. 종종 ‘너는 한국인이니까 한국어를 배워야해’ 식의 강요를 하는데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인정해줘야 해요.”

뿌리의 집 원칙이 ‘당사자 중심주의’인 것도 이 때문이다. “서비스 제공자가 아닌 받는 자의 입장, 즉 입양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합니다. 해외든 모국이든 입양인들의 요구는 동일해요. 바로 선입견과 차별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목소리를 존중받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뿌리의 집은 해외 입양인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을 뒷바라지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최대한 귀를 기울여 주는 거죠.”

입양인·미혼모 인권보호도 ‘복음’
덕분에 뿌리의 집은 그동안 여러 입양인·미혼모 단체들, 그리고 교수·법률가 등 전문가들과 손잡고 입양이란 창문을 통해 발견되는 아동·미혼모 인권에 관한 우리사회의 미성숙을 타파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등 다양한 결실을 맺었다.

2010년부터 5월 11일을 ‘싱글맘의 날’로 만들어 지켜온 것은 그 첫 번째 일환이다. 정부가 제정한 ‘입양의 날’(5월 10일)에 반기를 든 것으로 콘퍼런스·캠페인 등을 개최한다. 입양을 무조건 독려하기 이전에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미혼모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이들이 부모로서 자녀를 당당히 길러낼 수 있는 분위기와 시스템이 사회에 구축돼야 한다고 외치는 적극적인 몸짓이다.

▲ 뿌리의 집이 '싱글맘의 날'을 만들어 국제 콘퍼런스를 진행했다.

뿌리의 집은 입양을 고민하는 미혼모들을 초대해 입양인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준다. 서로 거울처럼 맞보고 대화하면서 미혼모들에게 어렵더라도 자녀를 기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 김도현 목사는 “국내외 입양 아동의 90% 정도가 미혼모 가정에서 나오는데 입양만 권장한다면 문제를 푸는 순서가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미혼모들이 아이를 포기하는 이유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고 별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지원이 시급한 거죠. 아울러 입양·위탁·시설 수용 등 친부모로부터 멀어질수록 아이에게 물질적 지원이 많아지는 현재의 왜곡된 시스템을 고쳐야 합니다. 입양이 아동을 환대하는 하나의 방식임에는 틀림없지만 친생가족과의 결별에 기초한 차선적 복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입양특례법을 전면 개정하는 성과를 얻었다. 개정의 핵심은 △입양 촉진 원칙의 삭탈 △입양에 대한 가정법원 판결제도의 도입 △입양숙려제 도입 △입양인의 가족 찾기 법제화 △중앙입양원의 설립 등이었다. 핵심 골자는 입양에 대해 공적 주체인 국가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2013년부터는 미국으로 입양되는 아이들이 IR-3비자를 받고 입국하도록 돕는 쾌거를 이루기도. IR-3비자를 통해 입국하면 자동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게 되며, 양부모는 입양 전 반드시 한국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 기존에 IR-4 비자는 양부모가 입양 전 입양아를 만나지 않고 입양기관이 대신 절차를 밟을 때 발급됐는데 시민권 획득에 어려움을 겪을뿐더러 파양·추방 위험이 높아 인권 훼손의 온상으로 지적돼왔다.

하지만 뿌리의 집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현재 보편적 출생등록제 입법운동을 펼치는 등 한국사회 남은 과제들을 매듭짓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난 15년간 후원의 손길과 연대단체들이 없었다면 뿌리의 집 혼자서는 절대 못했을 일들입니다. 우리사회 법과 제도에 사람을 사랑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마음이 깃들도록 하는 일 또한 복음입니다. 입양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아이와 엄마가 겪는 결별의 슬픔을 동시에 헤아리고 입양으로 내몬 우리사회를 돌아보자는 겁니다. 사자와 어린양, 강자와 약자가 함께 풀밭에서 노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뿌리의 집이 없어지는 게 비전입니다.”

김수연 기자  ksy@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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