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좇는 것은 예수인가 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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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좇는 것은 예수인가 돈인가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8.08.24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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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봅시다-크리스천의 성공

성경은 '성공' 아닌 '형통'을 말한다

최근 웹서핑을 하다가 한 기독교 매체의 기사를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아프리카 출신의 한 목사가 곧 내한 집회를 연다는 소식이었는데, 소개 문구가 경악스럽다. “000 목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통해 남아공을 넘어 전 세계 최대의 부를 가진 목회자로도 유명하다. (중략) 그의 집회를 통해 경제적으로 어려움 속에 살던 사람들이 다시금 하나님의 강력한 간섭하심을 통해 성경적 부를 창출하는 역사를 체험하고 있다.”

2018년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이런 집회가 열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기사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는 ‘성공’과 ‘부’였다. 집회를 참석하면 ‘부’를 거머쥐고 ‘성공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가 문장 곳곳에 숨어 있다. 기사를 보면서 찝찝한 기분이 든 건 나뿐일까. ‘크리스천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성공’이나 ‘부’를 운운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수년 전 국내에서 비슷한 성격의 강의가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청빈’이라는 단어로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결국은 예수 잘 믿어서 빚을 갚고 부자 됐다는 이야기다. 그 강의에 얼마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열광했는가를 생각하면 ‘좁은 길’을 이야기 했던 수많은 설교와 기독서적들이 한 순간에 무색해진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돈 많이 벌고 성공하는 자체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성공담을 추종하며 ‘나도 한 번’ 하는 마음을 갖는 게 문제라는 거다.

백 번 양보해서 이런 집회나 성공담이 비기독교인을 교회로 초청하기 위한 ‘도구’적 가치라도 있다고 치자. 그래도 이 방법은 틀렸다. 빠른 성장을 구가하던 때만 하더라도 이런 성공신화는 제법 ‘먹히는’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많은 용들이 개천에서 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니다. 고도성장 시대는 막을 내렸고, 계층 이동은 오래 전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됐다. ‘부의 대물림’ ‘수저 계급론’ 같은 용어들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린다. 교회에서 갈수록 보기 힘들어지는 청년들 사이에서는 ‘욜로’, ‘소확행’같은 말들이 유행한다. 이같은 현상을 교회는 무겁게 성찰해야 한다. 차라리 ‘성공’보다 ‘형통’을 이야기 하는 것이 어떨까. 그것이 성경적일뿐더러 덜 시대착오적이다.

근본적으로는 기독교적인 ‘성공’이 무엇인지, 우리 안에서 다시 정립하고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성경은 자기 계발서가 아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예수 믿어 부자 됐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몸소 가난을 살아내셨다. 그리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고 하셨다. 크리스천이라면 반드시 가난해야 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무엇을 좇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부’나 ‘성공’이라면 틀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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