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숨은 역사를 찾는 골목길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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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숨은 역사를 찾는 골목길 순례자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8.08.2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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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역사산책’ 시리즈 펴낸 서울신대 최석호 교수
▲ 서울신대 최석호 교수(가운데)는 전국 골목길을 직접 걸으며 써낸 '골목길 역사산책' 시리즈를 통해 전통문화 유산과 신앙유산의 위대함을 알리고 있다. 사진=최석호 교수 제공

경북 군위성결교회는 최근 문화재청이 공모하는 ‘생생문화재’ 사업에 1937년 지어진 예배당을 문화재로 등록해 달라고 신청했다. 교회 설립 이후 두 번째 지어진 건축물로, 이 교회가 그동안 허물지 않고 지켜온 4개 예배당 중 하나이다. 

‘생생문화재’ 등록을 위해 교회는 서울신대 최석호 교수(관광경영학과)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전통문화 유산과 여행 분야 전문가인 최 교수는 한국 기독교 초기유산 특유의 ‘ㄱ’ 예배당과 남녀 출입구를 따로 두는 2개의 문 등 요소를 조명해 제안서에 담았다. 

최 교수는 “군위성결교회와 같이 여전히 보존할 만한 근대문화 유산들이 한국교회 안에 적지 않다”며 “더 이상 교회 문화유산이 사라지지 않도록 체계적인 연합사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최 교수는 전국 각지를 발로 다니며 교회 문화유산을 발굴해 소개하는 일을 지속해오고 있다. 특히 그는 골목길을 다니며 잊혀져가는 역사의 흔적들에 호흡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 16일 최 교수를 서울역사박물관 뒷골목에서 만나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골목길,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
최석호 교수는 지난 4월 골목길 역사산책 ‘서울편’에 이어 최근 ‘개항도시편’을 출간했다. 전국 각처의 골목길을 순례해 얻은 발로 쓴 기록이다. 그가 골목길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처럼 오십대들은 골목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구불구불 골목길이 많은 부산에서 자라면서 친구들과 깜깜해질 때까지 놀고는 했지요. 부잣집에서 자랐지만 산동네에 올라가 친구들과 노는 것이 정말 좋았고, 지금도 골목에만 들어가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최 교수가 개인적인 추억 때문에 골목길만 찾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골목길은 평범한 사람들이 있고 소소한 일상들이 살아있는 곳이면서, 큰 민심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반면 큰 길은 힘이 있는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하고 일상적 진실이 감춰진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석화된 큰 길의 역사보다 골목길 역사가 매력적”
“한국교회 문화유산 보전, 초교파로 연대 필요”

최 교수는 지배자들이 쓰고 그만큼 화석화된 역사보다 생생한 삶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골목길이 좋았다. 그는 개항도시의 골목길에서 불같이 살다간 신앙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큰 길에서 듣는 것과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의 설명대로 ‘골목길 역사산책-개항도시편’에는 한국교회와 신앙 선배들의 숨결을 찾아가는 여정이 많다. 책에서 최 교수는 그 당대로 우리를 안내한다. 

신앙인들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듯, 개신교 역사도 당시대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부산 개항장’과 ‘인천개항장’, 광주 ‘양림동 근대길’, ‘순천 꽃길’, ‘목포 개항장 생명길’에서 만나는 역사적 위인들과 신앙 선배들, 역사의 현장을 책을 읽는 것만으로 직접 걷는 듯 경험할 수 있다.

복음으로 증오의 고리 끊은 선배들
최 교수에게 기독교와 관련 골목길에 대해 물었다. 부산에서 자라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그는 이상하게도 광주 전남의 기독교 문화유산에 대해 언급했다. 최 교수가 전남발전협의회 전문위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한 것이 이유였다. 

“광주전남 문화유산에 대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역사가 엄청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 지역에는 신앙을 지키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크게 알려지지 않다는 점이 가장 이상했습니다. 그 이유를 연구해봤습니다.”

그의 말대로 문준경 전도사 외에도 많은 신자들이 신안군 곳곳에서 인민군과 완장 찬 이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신안지역 교회에서 교인들이 산채로 묻혔고, 영암군 구림마을에서도 학살이 있었다. 영광군에서는 바닷가 제방에 무릎 꿀리고 굴비 엮듯 묶어서는 돌멩이를 매달아 우르르 수장시켜 버렸다. 이외에도 처참한 순교의 역사는 많다. 

“이 지역에 가면 당시 이야기를 잘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 수많은 순교자들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제가 찾은 이유는 용서였습니다. 기독교 신자 중 살아남은 가족들은 마을의 학살자를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용서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용서가 잘 안된다고 울면서도 같은 하나님을 믿으며 용서를 실천했던 분들입니다.”

복음화율이 다른 지역보다 크게 높은 이유는 바로 용서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발견했다. 전남 동부권에서도 여순사건 이후 손양원 목사님이 그랬던 것처럼 용서가 있었다.    

“문준경 전도사님의 장례식을 찍은 흑백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작은 섬들로 이뤄진 신안에서 온 산을 덮을 정도로 많은 주민들이 사진 속에 등장합니다. 문 전도사님은 죽음으로 보복의 고리를 끊으셨습니다. 그것이 핏 값이고 역사의 값입니다. 예배당 건물이나 병원, 학교가 중요한 유산이지만 그보다 핏 값이 더 강하게 제게 다가왔습니다.”

최 교수는 순교와 용서의 100년 기독교 역사가 1천년의 역사를 이긴 것이라고 묘사했다. 지금은 교회를 다니는 것이 부끄러운 시대가 됐다고 하지만, 결코 한국교회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그는 강조했다. 

전남뿐 아니라 고향 부산, 서울 등 전국 곳곳으로 확대해 훌륭한 기독교 문화유산을 찾기 위해 지금도 시간이 나는 대로 순례하고 있다.  

“내가 골목을 걷는 두 가지 이유”
한국교회 문화유산이 사라져가는 현실은 언제 생각해도 안타깝다. 옛 예배당은 허물어지고 각종 기록물들은 무관심 속에 버려지고 있다. 하지만 최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교회가 가진 유산은 많다고 이야기 한다. 

“광주 양림동과 순천읍성은 전체가 기독교 유산입니다. 신안군도 마찬가지고, 서울 정동은 노천박물관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노천기독교박물관이지요. 이러한 것들만 잘 살려내도 됩니다. 일반 시민들이 찾을 수 있는 기독교 문화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최 교수는 이제 한국교회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하기 위해 초교파적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자원으로서 인정을 받아 개신교 신앙이 토착문화로 뿌리를 남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골목길 역사기행 시리즈에서 우리나라 문화유산과 기독교 유산을 함께 담아내면서 그 가능성을 찾아가고 있다. 

“책을 기획한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교회역사마저 왜곡되는 현실을 바로잡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영국에서 유학 중 발견한 걷기 문화였습니다.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문화운동으로 걷기운동이 전개되는 것을 보았는데, 실제 많은 선진국들은 걷기를 통해 전통유산 속 정체성을 발견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서울편’에서 근대화 기로에 선 조선을 살펴봤다면, ‘개항도시편’에서는 식민지 근대화에 저항하며 대안을 찾고자 했던 선조들의 자주적 흔적을 골목길에 찾고 있다. 

개항 도시 안에서 선교사들과 교회는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설립해 대안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3.1운동의 거점은 거의 대부분 교회가 있었다. 또 대의제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현장이었고, 민주주의 가치가 일상으로 퍼져나가는 학교였다. 이제 그의 골목길 역사산책은 이후 전통도시 속에서 전개될 예정이다. 골목길 역사를 거친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는 여정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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