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없어도 될 법, 없어져야 할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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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없어도 될 법, 없어져야 할 법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8.08.1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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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교회는 되면서 대형교회는 안 된다니 이런 모순적인 법이 어디 있나.”

김하나 목사의 청빙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명성교회 교인들의 항변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세습방지법은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모순적인 법이 맞다. 담임 목사 청빙은 교인들이 결정할 일이지 총회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어쩌다 이런 이치에 맞지 않는 법이 탄생한 걸까.

우리나라 선거법상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의 절반은 여성으로 채워져야 한다. 당선 가능성이 제일 높은 비례대표 1번의 자리도 무조건 여성에게 주어진다. 얼핏 보면 남성의 기회를 박탈하는 모순적인 법으로 느껴질 수 있다. 

만약 남성과 여성이 정치계에서 균등한 기회를 갖는다면 여성 할당제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저 능력에 따라 국민의 선택을 받게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작금의 현실이 기계적으로 50:50 비율을 강제하는 여성 할당제를 탄생시켰다. 말하자면 양성평등이 자리 잡고 난 후에는 ‘없어도 될 법’이라는 얘기다. 

‘세습방지법’도 다르지 않다. 만약 대형교회 담임목사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지 않았더라면 세습방지법은 논의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우리의 대형교회는 어떤가.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교단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아들에게 물려주려 애쓰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미 답을 말하고 있다. ‘없어도 될 법’을 굳이 만들어야 했던 한국교회의 현실이 새삼 통탄스러울 뿐이다. 

세습방지법이 ‘은퇴하는’ 목사를 말하기 때문에 2년 전 ‘은퇴한’ 목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기가 막힌 말장난을 비판하기 이전에, 세습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저버린 부자(父子)에게 손가락을 들기 이전에 대형교회 담임목사직이 갖는 위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언젠가 한국교회가 세습방지법을 필요로 하지 않을 그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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