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길’ 걸으며 삶으로 그려낸 ‘천로역정’

‘불후의 명작’ 만화로 담아낸 최철규 작가
높은 완성도 돋보여…이현세 작가 수제자
진정한 기독인의 삶은 무엇인가 그린 수작
손동준 기자l승인2018.08.06 16:52:50l수정2018.08.06 23:27l14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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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규 집사는 지난 6년간의 작품활동을 돌아보며 힘들었지만 천국에는 하나님이 준비해놓으신 상급이 많이 쌓였을 거라며 밝게 웃었다.

흔히 믿는 사람은 좁은 길을 간다고들 한다. 그런데 정말 좁은 길을 가는 크리스천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곧 출판되는 만화 천로역정(생명의말씀사)의 작가 최철규 집사의 삶을 보면서 크리스천이 걸어가야 할 ‘좁은 길’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최근 6년째 그려온 천로역정의 탈고를 마친 그를 만나기 위해 용인의 작업실을 찾았다. 막 작업을 마친 다음날이어서일까. 그의 작업 공간 곳곳에 남아 있던 열정 가득한 크리스천의 냄새를 글로 담아 소개한다.

 

좁은 길을 간다는 것

천로역정을 그리는 동안 그와 그의 가족은 세 번이나 거처를 옮겨야 했다. 논현동에서 경기도 광주로, 그리고 지금의 용인까지…그야말로 집 팔아서 만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것뿐인가. 손도 망가졌다. 작품을 그리다가 오른손 검지 인대가 끊어지고 변형이 오면서 손가락 마디가 닭발처럼 튀어나왔다. 계속되는 어려움에 멘토 목사님을 찾아 하소연을 했더니 “최 집사님은 이 책을 만드는 게 얼마나 귀한지 모르나봐. 사탄한테는 이 작업을 막으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거야. 그러니 작업이 순탄하게만 가겠어? 이럴 때일수록 더 기도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때부터 영적인 전쟁이 시작됐다. 먼저 아픈 손으로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필압’을 줄여주는 디지털 기법을 도입했다. 낯선 작업방식에 적응하는 데만 일 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의 양을 늘렸다.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작업에 집중했다. 그렇게 6년, 힘들고 눈물 나는 기억들을 뒤로 하고 마지막 붓질을 마친 순간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작품을 그리는 여정이 ‘좁은 길’ 그 자체였기 때문이리라. 그는 천로역정이라는 작품에 대해 한 마디로 ‘크리스천의 삶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요약했다. 그의 얼굴에선 이 좁고 험한 길을 해쳐온 믿음의 용사로서 자부심이 가득했다.

“기독교인 가운데는 좁은 길을 ‘말만 하는 사람’과 ‘삶으로 살아가는 사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크리스천이 욕을 먹는 것은 삶으로 좁은 길을 살아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좁은 길을 가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본이 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하나님은 넓은 길로 가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분명히 말씀하셨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그러니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은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보면 말은 번지르르한데 뒤에 들려오는 소리는 가짜인 경우가 있어요. 맨 처음에 그 사람이 주목 받을지는 몰라도 거짓말은 결국 드러납니다. 지금까지 들키지 않았다면 자랑할 것이 아니라 두려워해야 합니다.”

 

▲ 최 집사의 책꽂이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여러 버전의 '천로역정'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천로역정 속의 수많은 ‘나’

존 번연이 쓴 책 천로역정은 시대를 초월한 베스트셀러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봤을 작품이지만 정작 그 안에 숨겨진 정수를 발견한 사람은 많지 않다. 최철규 집사의 작업실 책장에는 한국말로 번역된 천로역정의 여러 버전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다. 눈대중으로 슬쩍 훑어보기만 했는데도 17권이나 되는 천로역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 집사는 천로역정을 보면 볼수록 존 번연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천로역정을 처음 공부할 때만 해도 주인공 크리스천을 빼고 나머지는 다 나쁜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 수많은 캐릭터가 다 ‘나’였습니다. 예수 믿기 전의 나, 예수를 믿었지만 가끔 나오는 나, 약한 모습도 나오지만 내가 기대 못한 선함도 나옵니다. 종합해보면 천로역정은 이 땅에 사는 모든 크리스천,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믿는 자의 시각에서 쓰인 책이라는 겁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기독교적 가치관이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심리적 갈등을 성경말씀과 뒤섞어서 쓴 걸작품이죠.”

‘데마스’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릴 즈음이었다. 한참 물질이 부족해 어려움을 당하던 최 집사에게 누군가가 돈 벌 기회를 준다며 달콤하게 속삭였다. 당시에는 응답처럼 느껴져서 잡았던 일로 고생만 하고 돈도 떼이고 결과적으로 천로역정 원고 마감도 늦춰지게 됐다.

순례길을 가는 이들을 향해 큰돈을 벌게 해준다며 은광으로 이끌었던 데마스, 그 길을 좇았다가 독가스를 마시고 죽음에 이르렀던 이들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최 집사는 후회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성경에서 돈을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깨달았지만 또 돈이 부족해지면 ‘돈 돈’하는 게 인간이죠. 이겨낼 방법은 기도뿐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쌀이 떨어지면 사람을 통해 정확하게 채워주시고 차가 고장 나면 딱 필요한 만큼 채워주셨습니다.”

 

▲ 최 집사의 작업실에 붙은 천로역정 로드맵.

모든 것 쏟은 작품이지만

하나님을 만나 ‘새사람’이 되기 전까지 최 집사는 이현세 작가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수입이 높은 매우 촉망받는 작가였다. 성인만화를 그려서 큰돈을 벌었다는 동료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이처럼 좁은 길을 가는 와중에도 죄는 너무도 쉽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든다. 그럴수록 최 집사는 작품 속 크리스천처럼 믿음의 ‘전신갑주’를 단단히 챙겨 입는다. 지난 6년은 믿음 하나로 버텨왔다. 얼마나 많은 기도가 있었을까. 머리 깎을 시간도 없어 장발이 되어버린 최 작가의 얼굴에서 천로역정 속 ‘크리스천’의 모습이 보인다. 그뿐인가. 배경 하나를 그릴 때도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만화를 조금 그려본 사람이라면 ‘미쳤다’고 할 만큼 미련하게 그렸다.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길도 있었다. 처음 천로역정을 시작할 때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작가 한 명당 3천만 원의 지원금을 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진흥원 회장이 그의 스승인 이현세 작가였으니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이현세 작가는 최 집사의 콘티를 보고 수준이 높으니 지원해보라고 권유했다. 단, 두 장이 멀다하고 나오는 성경말씀과 하나님에 대한 언급을 빼야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특정종교를 밀어줄 수 없다는 것. 그 말을 들은 아내가 딱 한마디 했다. “여보 복음을 변질시키겠다는 거야?” 그 길로 전셋집 보증금을 뺐다.

그러나 이후에도 고민은 그치지 않았다. 초등부 교사로 섬기던 그는 주일 예배시간 헌금송을 부르다가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내게 있는 향유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위에 입 맞추고 깨트립니다”라는 가사 때문이었다. 그 길로 뒤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장장 6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충분히 돈을 받아서 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했겠지만 그것은 천로역정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았을 겁니다. 이 작품을 하면서 가시밭길도, 시궁창도, 늪에도 빠졌지만 다 지나고 이제야 웃을 수 있습니다. 아비가 못나서 맨날 이사만 다니게 하고, 아내에게도 제대로 된 남편노릇도 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지만 하나님께서 천국에 우리 가족 앞으로 많은 상급을 쌓아두셨으리라 믿고 위안을 받습니다. 어제 작품을 끝내고나니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더라고요. 정말 너무 힘든 길을 왔습니다.”

단순히 작품을 팔아서 돈을 벌겠다고 생각했다면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최 집사 스스로 천로역정을 걷는 마음으로 임했기에 가능했다. 주변에서도 역대 이런 기독만화가 없었던 만큼 ‘대박’이 터질 거라고 그를 추켜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최 집사는 “이런 마음조차 내려놓는 것이 마지막 관문”이라며 조심스러워 했다. 오히려 흥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하나님이 뜻하신 바가 있을 테니 원망하지 말자’며 아내와 마음을 다잡는다.

매일 드리는 가정예배에서도 ‘아버지, 입을 열어 원망하지 않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빼놓지 않는다.

“지금까지 산 것도 감사한데, 20년 전에 걸렸던 이유 모를 병으로 죽었어야 하는 제게 아내도 주시고 자녀도 주신 것에 감사하죠. 지금보다 형편이 어려워지면 시골에 가면 되죠. 그것 또한 하나님의 뜻일 것입니다.”

최 집사가 그린 만화 천로역정은 올해 겨울 독자들을 찾아간다. 최 집사는 “이 책은 애초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라며 “중고등학생과 청장년들이 읽으면서 크리스천이 살아갈 길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다.

▲만화 천로역정의 일부.
손동준 기자  djson@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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