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백석, 통합 과정마다 ‘전권위→임원회→실행위→총회’ 결의 얻어

총회 팩트체크// 대신-백석 교단 통합 절차 어떻게 밟았나? 이현주 기자l승인2018.07.09 22:53:06l14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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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2월 16일 천안 백석대학교회에서 열린 대신-백석 통합선언총회에서 통합이 선포되자, 양 교단 총대들이 기립하여 화답하고 있다.

역대 증경총회장으로 구성된 전권위원회가 앞장서 통합 추진
‘대신’ 명칭까지도 총대들 만장일치 찬성으로 총회에서 결정
공증 서류에 ‘합류’라고 표현한 것에 ‘잔류’ 가능성도 포함돼

 

 

2015년 9월, 구 대신과 구 백석이 하나가 된 이후 3년의 시간이 흘렀다. 대외적으로 ‘대신총회’ 이름을 사용하면서 구 백석 가족들의 속이 상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교계 안팎에서 ‘백석’이라는 이름이 주는 공신력은 상당하다. 그러나 구 백석은 십자가 정신으로 그것을 내려놓기로 결단했다. 마침내 교단 명칭을 양보하면서까지 구 대신과 통합할 수 있었고, 통합을 이끄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해왔다.

그런데 최근 총회 안에 교단 통합 자체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15일 판결이 “구 대신이 개최한 제50회 총회의 결의에 대한 판결”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 않는다. “법원이 대신과 백석의 통합을 무효라고 했으니 통합은 깨졌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판결문에 분명하게 ‘피고의 2015. 9.14. 제50회 총회에서 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백석)와의 교단통합 결의는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도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말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 누군가는 이 통합 자체를 부정할 때 얻을 수 있는 반대급부가 있다는 뜻이다. 특정 그룹에서는 “백석 기치를 내걸고, 총회를 장악하겠다”는 말도 들린다. 단순히 교단명칭 문제가 아니라 ‘부유해진 교단의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총회 안에 떠도는 안타까운 유언비어를 접하면서 구 백석의 관점에서 교단 통합 결의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총회 자료집과 회의록, 그리고 당시 기사를 근거로 다시 점검해본다.

2014년 9월 총회에서 통합 추진 결의
총대들, 대신과 통합 만장일치로 승인

대신과 백석의 통합 소식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2014년 9월 총회에서였다. 백석보다 일주일 먼저 열린 예장 대신총회에서는 통합추진전권위원회 보고서가 상정됐다. 당시 총대들은 팽팽한 찬반 의견을 피력했지만, 결국 위원회 보고서는 채택됐다. 이에 따라 통합추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예장 백석은 2014년 9월 22일 열린 제37회 정기총회에서 통합합의안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때 공개된 합의서는 큰 틀에서 4가지였다. △교단명칭은 ‘대신-백석’으로 하되, 대신총회에서 전체 교회 중 90% 이상이 통합에 합류할 시 명칭을 대신으로 한다 △신학대학원 명칭은 대신총회에서 전체 교회 중 80% 이상이 합류할 시 백석대학교 대신신학대학원으로 한다 △총회 임원은 2년 간 백석에서 맡는다 △교단 역사는 백석으로 하되, 통합 이후 역사편찬위원회에서 재논의하기로 하다 등 4가지 합의가 핵심 골자였다.

통합추진 과정은 통합전권위원인 증경총회장 유만석 목사가 보고했다. 이 통합전권위원회 보고는 제주노회 장을용 목사의 동의와 중원노회 강순모 목사의 제청을 받아 만장일치 기립박수로 가결됐다. 대신과의 통합추진을 총대들이 만장일치로 승인한 순간이었다.

이날 총회에서는 총회장 직속기구인 통합전권위원회 위원으로 부총회장인 이종승 목사를 추가했다.

2014년 당시 통합전권위원은 장종현 총회장을 위원장으로, 양병희, 장원기, 유만석, 정영근, 이종승, 이선, 한광식, 곽성현, 이경욱 목사 등 총 10명이었다.

최초 합의 4개항에서 최종 8개로 늘어
절차상 하자 없도록 증경총회장 동의 구해

총대들 만장일치로 통합추진이 시작된 후 구 백석이 2014년 11월 11일 임원회에서 공개한 구 대신과의 통합합의서에는 총대수에 대한 항목이 추가됐다. 또한 기존 4개 합의항도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총 8개 항으로 늘어났다. 구 백석총회는 임원회가 허락한 합의안을 가지고 구 대신과 12월 2일 추가 협상을 진행했다.

우선 교단 명칭에 있어서 ‘대신-백석’을 하되, 대신총회에서 90% 이상이 통합에 합류할 시 명칭을 ‘대신’으로 하고, 60% 이하가 합류할 시 ‘백석’으로 한다는 내용을 추가함으로써 90% 이상이 참여하는 완전한 통합을 추진하되, 40% 이상이 잔류하는 통합이 될 경우 교단 명칭을 ‘백석’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합의였다.

당시 양 교단은 “통합총회의 역사는 백석으로 한다. 통합 이후 역사편찬위원회에서 새로운 교단사를 편찬하여 대신총회 역사를 병행하여 발행하기로 한다. 역사편찬위원회의 위원은 동수로 하고 위원장은 최복규 목사로 한다”고 정리했다. 통합 후 역사편찬위원회를 통해 정리작업을 진행하며, 역사를 백석에 양보한 대신 측에 위원장을 맡겼다.

총대수 역시 ‘대신총회에서 전체 교회 중 90% 이상이 통합에 합류할 시 대신총회와 백석총회는 쌍방 교단에 대한 배려와 한 형제교단으로서의 하나됨을 위하여 2014년 9월 총회 전 대신교단과 백석교단의 총대수를 동수로 한다. 9월 총회와 추후 통합되는 교단의 총대수는 총대법의 원칙을 따른다’고 합의했다. 이 합의는 제48회 구 대신총회에서 총대들이 ‘총회 대의원 동수’를 요청하면서 추가협의에 따라 받아들여진 것이다.

임원구성은 2015년 9월부터 통합총회장은 장종현 목사로 하고 임원은 정-부가 대신, 백석이 교차로 맡기로 했다. 구 백석에서는 이미 정해진 부총회장이 있었다. 제1부총회장 이종승 목사, 제2부총회장 이주훈 목사였다. 이주훈 목사는 구 개혁과 통합당시 개혁측의 총회장 몫을 백석에 넘기면서 장종현 총회장이 지명권을 사용했고, 총대들의 동의를 얻어 제2부총회장에 이주훈 목사를 추대했다. 이주훈 목사는 구 대신과 합의에 따라 부총회장에 지명된 것이 아니라 이미 선통합을 이룬 구 개혁의 몫으로 그 자리에 지명된 상태였다.

합의에 따라 장종현-이종승-유충국-이주훈 목사에 이어 구 대신-구 백석으로 교차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이밖에 양 사무총장이 공동사무총장을 맡아 3년 임기를 수행하고, 양쪽 직원을 그대로 승계하며 사무실은 구 백석총회 사무실에서 통합 운영한다는 것이 최종 합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합총회는 2014년 12월 16일 천안 백석대학교회에서 열기로 했다.

구 백석은 구 대신과의 통합에서 절차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매번 의결권을 가진 회의를 열어 추인을 받았다. 구 대신과 8개항에 대한 합의를 마무리하기에 앞서 2014년 12월 1일 증경총회장단과 전권위원회, 임원회가 모인 가운데 하나씩 축조심의를 했고, 연합정신에 따라 통합을 잘 마무리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당시 증경총회장들은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연합의 큰 틀이 깨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2014년 12월 16일 통합선언총회 개최
예장 통합, 합동 등 교계의 축하 잇달아

최종 합의된 8개항은 법원의 공증을 받았다. 그리고 합의에 따라 2014년 12월 16일 천안 백석대학교회에서 통합선언총회를 개최했다. 사실 양측 합의와 총회 공고에 따르면 이날 통합선언식은 ‘통합총회’로 치러졌어야 했다. 하지만 구 대신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통합선언총회로 바뀌게 됐다.

통합선언을 축하하기 위해 양 교단에서 총대와 목회자 등 2천여 명이 모였다. 외부에서는 구 대신과 백석이 하나가 되는 모습에 박수와 응원을 보냈다.

이날 설교를 전한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이종윤 목사는 “대신과 백석 두 교단이 통합 후 더 겸손한 모습으로 한국교회를 섬기고, 통합 후 오는 고난도 끝까지 참고 오래 견디며 서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장 통합 정영택 총회장은 “한국교회가 기독교 역사상 130년 만에 가장 빨리 성장했다고 자랑하지만 세계교회에 나가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분열되어 있다”며 “주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내 교회를 세우라고 했는데 주님의 기도를 이루신 여러분에게 존경과 축하를 드린다”고 전했다.

예장 합동 백남선 총회장은 “대신과 백석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합해진 것 축하한다”며 “한국교회에 선한 영향력 끼치고 하나님 은혜 가운데 발전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구 대신과 백석의 통합은 단순히 양 교단의 잔치가 아니라 분열의 한국교회에 ‘하나됨’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헌법-행정 등 세부협상에만 8개월
“장로교 모범되는 총회 만들자” 약속

2014년 12월 통합선언을 마친 후 양 교단은 실질적인 통합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세부협상단을 만들어 총회 헌법과 규칙에 대한 통합작업에 들어갔고, 총회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행정적인 부분을 통일하는 작업도 진행됐다.

법제소위원회는 2015년 5월 첫 모임을 열고 양 교단의 신학과 역사를 존중하면서 통합 후 7천 교회 규모의 대형교단이 될 것을 전제로 교단 수준에 적합한 헌법을 정비하자는 뜻을 모았다. 구 백석 법제소위원장은 김진범 목사가, 구 대신 법제소위원장은 박태현 목사가 맡았다.

신학적 차이는 전혀 없었다. 헌법 역시 장로교단 헌법의 큰 틀에서 세부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신학파트 협상을 맡은 백석대학교 역사신학 장동민 교수는 “양 교단 신학과 교리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결과, 큰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12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등을 기본으로 대신총회가 제정한 대한예수교장로회 교회 선언과 2010년 백석총회가 선포한 개혁주의생명신학 선언문 등을 헌법 교리부분에 모두 삽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통합선언총회 이후 무려 8개월 동안 헌법과 규칙, 행정에 대한 통합작업을 진행한 양 교단은 2015년 9월 14~15일 통합총회를 확정했다.

구 백석 통합 협상단장 이종승 목사는 “백석과 대신의 통합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뿐만 아니라 갈라진 한국교회를 하나로 모으고, 분열된 남과 북을 하나로 잇는 놀라운 결실을 맺길 바란다”며 장로교회의 모범이 되는 교단으로 모든 과정이 은혜롭게 마무리되길 기원했다.

구 백석은 통합총회 공고 이틀 전, 전권위원회 모임을 열어 통합총회 개최에 대한 허락을 구했다. 전권위원들은 만장일치로 통합총회를 허락했다.

2015년 9월 14일 ‘대신’ 이름으로 통합
미래 위한 결단…모든 절차 법대로 마무리

2014년부터 2015년까지 햇수로 2년 동안 수차례 크고 작은 회의를 통해 양 교단의 통합이 추진됐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마침내 통합은 이뤄졌다.

2015년 9월 14일 수원 라비돌리조트에 걸린 현수막은 ‘대신-백석 통합총회(대신)’이었다. 양측 합의대로라면 구 대신에서 90%가 합류한 것을 확인해야만 ‘대신’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 대신 총회장 전광훈 목사는 “명칭을 먼저 (대신으로) 사용해주시면 90%를 채우겠다”고 백석 총대들을 설득했다.

통합총회 직전 열린 백석 전권위원회 안에서도 의견이 갈렸고, ‘백석’ 명칭을 버릴 수 없다는 강한 반발도 있었다. 또 ‘공증’ 합의대로 하는 것이 법이고 원칙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백석은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백석 통합총회(대신)’이라는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 대신측이 분열 없이 교단 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시간을 1년 더 벌어준 것이다. 구 백석의 모든 절차는 법대로 진행됐고, 만장일치 동의로만 확정됐다.

통합총회 석상에서도 증경총회장 홍태희 목사가 “합의 공증과 다르게 통합이 진행됐다”며 명칭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총대들은 “이 또한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며 통합에 순종했다. 만장일치 기립박수로 통합총회가 성사된 순간이었다.

치사를 전한 구 대신 증경총회장 김요셉 목사는 “오늘의 통합은 하나님께 영광이고, 교회와 사회에도 주목받는 통합”이라며 “인간의 욕심이 분열을 가져왔지만 주님이 대속의 역사를 통해 하나됨을 이루셨고, 대신과 백석이 눈물 나는 희생으로 하나됨을 이뤘다”고 말했다. 구 백석의 많은 양보가 있었기에 통합에 이를 수 있었음을 구 대신 총대들도 알고 있었다.

당시 장종현 총회장이 교단 명칭과 총대수 등 많은 것을 양보하면서까지 통합을 추진한 이유는 대신과 백석의 후배와 제자들에게 목회하기 좋은 교단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장종현 목사는 “기독교가 분열된 시점에서 영적 지도자라면 교회사적인 미래를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다음세대 목회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또한 성경이 답이라고 고백한다면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통합에만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도들의 학력과 수준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미래는 건강한 신학교 없이 교단이 존재하기 어렵고, 역사적 개혁주의 입장의 확실한 교단 정체성과 정통성을 갖춘 브랜드 있는 교단만이 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엇보다 기득권만 움켜쥐고 분열하는 한국교회에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과 백석의 통합은 한국교회가 처한 위기 앞에서 교단들은 하나가 되어 개교회의 목회를 지원해야 하고, 기도운동 성령운동으로 복음전파에 앞장서자는 것이 본질적인 목적이었다.

구 백석 통합결의 절차상 하자 없어
‘합류’라는 표현은 통합 유연성 뜻해

백석 비대위를 중심으로 “구 대신의 통합결의가 무효니까 우리의 통합도 무효”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신-백석의 통합을 무효로 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구 백석의 합의 과정에서는 법적 완전성을 기하기 위해 세 가지 안전장치를 해놓았다. 하나는 ‘공증’이고, 또 하나는 ‘합류’라는 표현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결의 절차’다.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구 대신과 구 백석의 합의는 법원의 공증을 받았다. 법적 다툼이 생길 때는 어떠한 합의보다 법원 공증서류가 우선적인 효력을 갖는다. 2014년 11월 최종 8개항에 서명한 후 공증한 합의서가 최종 효력을 지닌다.

이 공증 합의서에 명시된 ‘합류’라는 표현은 통합의 유연성을 담고 있다. 합의서에는 구 대신의 결의에 따라 혹은 양 교단의 결의에 따라 통합한다는 문장이 없다. 대신에서 ‘합류할 경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합류할 수도 있고, 합류하지 않을 수도 있다. 2015년 9월 총회 이후 방배동 대신총회로 온 교회는 ‘합류’한 것이고, 안양에 남은 교회는 ‘잔류’한 것이다. 구 대신총회 제50회 총회 결의는 무효가 됐지만 ‘합류’와 ‘잔류’로 대신총회는 서로 이별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구 대신 일각에서는 지난 법원 판결에 대해 “이번 판결은 정통성이 안양에 남았다는 뜻이고, 우리는 결국 이탈해서 백석과 통합한 게 됐다”고 한탄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래서 구 대신에서는 제50회 총회가 제대로 개회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법원 판결에 대응하기 위해 제50회 총회를 다시 소집해야 한다는 해법도 나오고 있다.

구 대신은 의사정족수와 의결정족수 미달로 인해서 제50회 총회를 인정받지 못했다. 모두가 합류할 수 있도록 ‘대신’ 명칭을 확정했지만, 감정의 골이 깊어진 싸움은 결국 하나로 마음을 모으지 못했다.

하지만 구 백석은 다르다. 2014년 총회에서 통합 추진을 결의했고, 2014년 통합선언총회를 통해 통합의 결의와 의지를 다시 확인했으며, 2015년 통합총회에서도 만장일치 기립박수로 통합을 확정했다. 그리고 총회에 통합관련 안건을 상정하기 전에는 반드시 전권위원회와 임원회, 실행위원회의 단계를 거쳤다. 절차상 하자를 주장하기엔 2014년 통합추진부터 통합 이후까지의 모든 과정이 총회 회의록이 너무 잘 정리되어 있다.
 

 

이현주 기자  hjlee@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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