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의 역사 견인한 교회…‘르네상스’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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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의 역사 견인한 교회…‘르네상스’를 꿈꾼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8.07.03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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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다는 ‘모험’ 택하라
업계-독자 쌍방 노력 필요
▲ 기독출판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모습. 예년에 비해 2배 가까운 인파가 몰렸지만 기독교 출판업계 부스들은 다소 밋밋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 성경의 말씀을 바탕으로 확장해온 기독교는 인류의 출판 역사를 이끌어 온 종교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구텐베르크 성경은 종교개혁뿐 아니라 ‘인쇄된 책의 시대’를 활짝 연 상징으로 꼽힌다. 그만큼 기독교와 출판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구한말과 일제식민기 기독교는 병원과 학교뿐 아니라 출판 영역에서 근대 지식과 학문의 정착에 기여했다. 김성연은 2015년 발표한 논문 ‘식민지 시기 기독교 출판과 책의 유통-조선예수교서회를 중심으로’에서 교회가 한국 출판업계에 미친 영향을 소개하며 “출판과 판매에 머물지 않고 서적의 보급과 독서까지 관여하여 식민지 조선의 독서장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 한국 출판계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지난달 열린 2018 서울국제도서전에는 평년과 마찬가지로 기독교문화거리가 조성됐지만 분위기는 예전같이 않았다. 대회 조직위에서는 올해 국제도서전에는 예년보다 2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찾았다고 발표했다. 매출도 15~20%가량 늘었다. 하지만 기독교문화거리의 경우 방문객도 줄고 매출액도 줄었다. 부스 위치도 찾기 어려운 맨 위쪽 기둥 아래로 배치돼 찾기도 쉽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기독교출판에 던져진 ‘확장’ 과제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확장’이었다. 주제에 맞게 다양한 시도가 눈길을 끌었다. 읽어주는 책 개념의 ‘오디오북’을 비롯해, 처음 도입된 ‘라이트 노벨’(만화풍의 삽화가 들어간 작은 판형의 소설), 가상현실 체험 부스 등이 특히 많은 관심을 받았다. 바야흐로 ‘확장’은 실험을 넘어 생존을 위한 한국 출판계의 ‘키워드’가 된 것으로 보였다.

반면 기독교문화거리는 입지도 좋지 않은데다 소위 빅3로 불리는 대형 출판사들의 불참으로 인해 ‘확장’은커녕 예년의 수준을 지킨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아야할 형편이었다. 기독교문화거리에 참여한 한 출판사 관계자는 “도서전은 위치를 많이 타는데,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앙에 가까웠는데 구석에 치우치다 보니, 찾아가기도 어려웠다”며 “붐비는 곳은 사람이 많아서 돌아다니기도 힘들었는데 우리(기독교문화거리)는 한산했다. 부익부 빈익빈 도서전이 된 것 같아 아쉽다”고 소감을 전했다. 

영세한 출판사들이 다수 포함된 기독교출판업계를 배려하지 않은 대회 조직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그만큼 기독교계에서 ‘확장’이라는 주제에 걸맞은 변화가 있었는가를 되짚어보면 시대의 변화에 뒤떨어지는 기독교출판의 현실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사실 출판업계 자체의 불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 ‘이대로 가다간 다 죽는다’는 위기의식 앞에 일반출판 업계에서는 불황을 돌파하기 위해 상식을 뛰어넘는 독특한 도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올해를 ‘책의 해’로 선정하고 책을 읽으며 캠핑을 하는 ‘북캠핑’, 책과 관련된 영상을 직접 제작해서 올리는 ‘북투버’ 캠페인, 서점이 없어 책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을 도는 ‘이동서점, 북트럭’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개인들도 독립출판과 기발한 기획출판을 통해 ‘책 읽지 않는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서울 시내에서 20년간 대형 기독교서점에서 일해 온 A지점장은 “기독교출판업계는 과감한 시도보다는 편안하게 가겠다는 생각이 만연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늘 비슷한 작가, 비슷한 내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출판사의 크기에 상관없이, 모두 유명 목회자의 번역서나 대형교회 목사, 아니면 교수들의 책들 위주로 펴내려고만 한다. 이것은 위험을 회피하겠다는 거다. 이런 식으로는 신선한 작품, 새로운 작가들이 발굴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독출판 살리려면 교회가 읽어라

기독교출판협회의 최승진 사무국장은 기독출판업계가 겪고 있는 위축이나 불황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희망은 있다”고 말했다. “시장 자체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독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는 것. 최 사무국장은 “속도가 더디긴 하지만 기독교출판업계에서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며 다만 “이런 시도를 누리는 사람은 잘 누리지만 다수가 즐기는 대중성의 부분에서는 쇠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특히 기존의 신앙간증 일변도에서 벗어나 세계관과 복음을 혼합하여 새롭게 기독교의 행간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기획출판의 증가는 고무적이다. 최 사무국장은 팀 켈러 목사나 조정민 목사가 쓴 책들을 대표적으로 꼽으면서 “청년들이나 기존 신자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7월 기독교서점 베스트 도서 가운데는 팀 켈러 목사의 책들이 무려 5권이나 이름을 올렸고, 조정민 목사의 ‘왜 기도하는가’와 ‘예수는 누구인가’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밖에 과학의 시각에서 기독교를 다룬 우종학 교수나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 등 출판의 다양성을 풍성하게 해주는 작가들도 주목 받고 있다. 최 사무국장은 “출판의 다양성은 풍성해지고 독자의 니즈도 풍성해졌는데, 양쪽의 접점이 잘 맞지 않는 것은 아쉽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침체기 속에서도 대중성의 영역이 신앙운동처럼 한순간에 번질 수도 있다”면서 “산업으로서의 종이가 끝날 것이라는 질문은 여전하지만 콘텐츠 생산이라는 출판사의 역할은 앞으로도 공고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지막으로 최 사무국장은 “기독교출판협회 회원사에서 출판하는 단행본만 1년에 145권이더라. 비회원사까지 포함하면 1000권이 넘을 것”이라며 “너무 많은 책이 나오지만 거기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90%이상은 한 달 안에 시장에서 사라진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이 책들의 사활을 자본이나 생태계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적극적으로 향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자녀 교육이나 이성교재, 청지기로서의 삶, 기업운영, 이웃 돌봄, 동성연애자에 대한 대응 등 우리가 궁금한 모든 것들이 책 속에 있다”며 “교회가 읽지 않는다면 기독교 출판업계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문화를 키우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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