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들의 희망으로 한 땀씩 꿰어 만든 구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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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들의 희망으로 한 땀씩 꿰어 만든 구두죠"
  • 김수연 기자
  • 승인 2018.07.02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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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구두 만드는 풍경' 유석영 대표

대통령 5년 신고 또 주문한 구두…폐업 4년 만에 새출발
청각장애인들의 자립도와 '하나님께 영광'

▲ '구두 만드는 풍경' 유석영 대표

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로 유명했던 수제화 브랜드 아지오(AZIO)가 새출발을 알려 화제가 됐다. 1급 시각장애인인 유석영 대표(56·경기도 하남 초동교회)와 청각장애인 직원들로 이뤄진 제조사 '구두 만드는 풍경'이 폐업의 아픔을 딛고 4년여 만에 재기한 것. 매일을 거룩한 부담감 속에서도 감사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유석영 대표를 만나 신앙고백을 들어봤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비하심
아지오의 감동적인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고 유석영 대표가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건 다름 아닌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2016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무릎을 꿇고 참배하던 문재인 대통령의 낡은 구두를 보고 한 네티즌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것.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 이 구두를 '밑창이 닳아 해질 때까지' 신게 된 것일까? 

때는 회사가 폐업하기 1년 전인 2012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대행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에서 판로개척에 힘 쏟던 유석영 대표에게 구두 한 켤레를 샀다. 그로부터 꼬박 5년 뒤인 2017년 5월14일 청와대로부터 연락이 왔다. 구두 한 켤레를 더 구입하고 싶다고.

"아직도 그 구두를 신을 줄은 몰랐는데 저도 놀랐습니다." 전화를 받은 유석영 대표는 잊지 않고 구두를 찾아준 데 대해 마음이 뭉클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착잡했다. 품질은 인정받았으나 공장이 문을 닫아 더 이상 구두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 아직도 그는 2013년 아지오를 포기해야만 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직원들과 헤어지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장애인이 구두를 만들면 얼마나 잘 만들겠느냐'는 사회적 편견보다도 제가 경영자로서 많이 부족했던 탓이 더 큰 것 같아 자책도 많이 했죠.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었습니다."

꿈을 갖고 열심히 일했던 직원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는 미안함, 그래서 이들에게 빚을 졌다고 말하는 유석영 대표는 오직 스스로에게만 책임을 돌렸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낮아졌다. "사실 왜 하나님은 내 편이 돼주지 않았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자신을 돌아보니 하늘의 것들이 아닌 땅의 것들에 매여 살았더라고요. 언제부터인가 저는 굉장히 일 중심적이었고 명예와 욕심으로 가득해졌죠. 이걸 하나님이 깨닫게 하셨어요."

물론 그럼에도 재오픈은 엄두도 못 냈다. 하지만 사람이 아무리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하나님이라고 상황은 그의 생각과는 반대로 철저히 하나님 뜻대로만 흘러갔다. 아지오가 소위 '이니 굿즈'로 뒤늦게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손님을 모아 줄 테니 용기를 갖고 회사를 살려 달라' 등의 응원이 쇄도했다. 심지어 직접 찾아와 설득하는 고객들도 있었다. 이에 더해 평소 절친한 유시민 작가를 비롯해 가수 강원래·성우 배한성씨 등 뜻있는 사람들이 모델로 나서주겠다며 물심양면 지원을 약속하기도. 하나님의 강력한 뜻에 결국 두려웠던 그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하나님은 제가 쉬는 동안 저의 모든 교만함을 내려놓고 그분의 형상대로 다시 빚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때에 돕는 이들을 붙여주셔서 다시 시작하게 하셨죠. 하나님은 마치 자로 센티미터를 재듯 제 인생을 세밀하게 재단해나갔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유석영 대표가 아지오 시즌2를 결단하자 샘플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선주문이 들어왔고 이 돈을 보태 재료도 살 수 있었다. 그렇게 '구두 만드는 풍경'은 사회적 협동조합 인가를 받고 경기도 성남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 '구원'
그렇다면 '구두 만드는 풍경'이 맨 처음 설립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먼저 그가 시력을 잃게 된 이유를 먼저 설명해야 할듯하다. 유석영 대표가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은 건 중학생 무렵이었다. 서서히 보이지 않던 것이 순식간에 시각장애로 번진 것. 성적은 바닥을 쳤고 희망조차 잃은 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자책했다. 짧지만 노숙생활까지 감행하며 방황하던 그를 살린 건 큰고모의 간절한 기도였다. 

"지독스러운 유교집안에서 유일하게 큰고모만 신앙을 가졌어요. 그리고 매일 새벽기도에서 모든 가족들의 이름을 한명씩 불러가며 영혼구원을 위해 중보해주셨죠. 그땐 '기도는 조용히 하는 건데 큰고모는 왜 이렇게 우리들의 이름을 외칠까' 몰랐어요. 그런데 막상 실명하고 인생이 너무 힘들어지니 그때서야 교회를 가야겠단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훗날 알게 됐죠. 내가 교회를 나간 것도, 지금 우리 가족 모두가 믿음의 자녀가 된 것도 큰고모의 절절한 기도 덕분이란 걸. 제가 하나님을 알기 이전에 하나님이 먼저 저를 선택하고 구원해주신 겁니다."

20대 초반 기적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유석영 대표. 그에게 구원은 이렇듯 선물처럼 찾아왔다. 비록 하나님을 만나기 전 그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훗날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의 자양분이 됐다. "청소년 시절 하나님 앞에 열심을 다했거나 약속한 것이 없으니 '왜 나에겐 이런 고통을 주셨나' 하나님께 서운할 것도 없었어요. 하나님을 탓할 만큼 제 것을 내어드린 적이 없는 걸요. 그보다는 오히려 제 광야시절이 신앙을 가진 후에 더 도움이 됐죠. 하나님이 저를 일찍이 정금처럼 단련시킨 덕분에 어려움이 닥쳐도 버틸 힘이 생겼으니까요. 하나님 안에서는 어떤 시간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석영 대표는 하나님을 모를 때 꿨던 꿈마저 이뤄졌다고 웃어보였다. 어렸을 적 옆집 아저씨가 '너는 말도 잘하고 얼굴도 잘 생겼으니 아나운서가 되면 좋겠다'고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진 한마디에 어렴풋이 '진짜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는데 그로부터 십 몇 년이 훌쩍 지나 우연한 계기로 모 방송국 리포터로 데뷔한 것이다. 그리고 무려 11년간 르포제작자까지 겸하며 방송인으로 활약, 불가능할 것이란 주위의 선입견을 보란 듯이 이겨냈다.

"처음 시력을 잃었을 땐 의사도 선생님도 '열심히 공부해봤자 소용없다'고 했습니다. 부모님도 한숨만 쉬셨고 저 역시 스스로를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저를 이끌어주셨어요. 제가 기도로 구하지도 못했는데 하나님은 저를 먼저 짝사랑해주셨고 제 마음 속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유석영 대표가 청각장애인들과 인연을 맺은 것도 리포터로 일하면서다. 그는 어느 날 취재차 들른 한 구두공장에서 청각장애인들이 기쁨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이후 2006년 경기도 파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장으로 임명돼 청각장애인을 위한 운전면허·꽃꽂이 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자립'임을 절감했고 동시에 과거 구두공장에서 봤던 청각장애인들의 행복한 미소를 떠올렸다.

유석영 대표는 특히 1980~90년대 특히 청각장애인들이 주로 종사했던 구두제조분야에서 자동화 생산시스템과 중국으로의 공장 이전에 밀려 훌륭한 기술력을 갖고도 어쩔 수 없이 퇴직한 현실을 고려, 2009년 12월 구두 만드는 풍경을 설립했다.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이에게 나름의 재능과 은사를 주셨고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영광 받으신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장애인들도 충분한 능력과 솜씨를 가졌고 오히려 편견에 맞서기 위해 품질에 더 만전을 기하죠. 제 소명은 그런 이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마음껏 격려해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구두 만드는 풍경은 아지오의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아 한때 백화점·쇼핑몰에 입점 시켰다. 최근에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및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과 함께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협약'을 체결해 청각장애인의 재취업의 길을 넓히기도 했다. 하지만 유석영 대표의 사명은 단순히 청각장애인들의 먹고 마시는 문제를 넘어 '복음전파'에 있다.

"파주시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할 적, 월요일마다 기도모임을 열었는데 한 번은 누군가 '교회 건립'을 기도제목으로 내놨어요. 놀랍게도 이는 저 또한 오래 전부터 줄곧 기도했던 바였죠. 그때부터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고 거기서 얻어지는 수입을 통해 교회를 세우면 좋겠다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기부를 강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유석영 대표는 먼저 직원들 모두가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목회하는 심정'으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도의 씨앗을 뿌린다.

"구두를 만드는 6명의 청각장애인들 중 2명이 크리스천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팀원들도 언젠가는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리라 믿어요. 큰고모가 저를 위해 그랬듯 저도 직원들 한명 한명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의 숲을 일궈가고 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로마서 12장15절 말씀을 인생의 푯대로 삼는다는 유석영 대표. 마지막으로 그에게 비전이 무엇인지 물었다. "구두를 만들기 위해 직원들과 고객들의 발을 재러 다니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무릎을 꿇어야 해요. 대개는 발을 천시 여기지만 예수님이 언제나 낮은 자리에 임하시고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우리도 그 마음을 닮아 최선을 다해 섬긴다면 서로가 감동을 나누고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구두 만드는 풍경'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청각장애인들에게 앞으로 100년은 대물림 하는 기업으로 남길 바랍니다." 

▲ '구두 만드는 풍경' 유석영 대표와 직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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