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사실상 허용…대체복무제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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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사실상 허용…대체복무제 쟁점
  • 김수연 기자
  • 승인 2018.06.2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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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사람을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이 요구해온 대체복무의 길을 터줌으로써 사실상 병역거부를 인정한 '반쪽 판결'이란 지적이 나온다. 

헌재는 28일 병역법 88조1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법원이 낸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4(합헌)대 4(일부위헌)대 1(각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병역법 88조1항은 현역입영 또는 사회복무요원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기일부터 3일이 지나도 불응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은 그동안 병역법 위반에 대해 집행유예 없는 징역형을 선고해왔다.

헌재는 이날 판결문을 통해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근거가 되는 다른 공익적 가치와 형량 할 때 결코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보편적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없다"면서 "처벌조항은 병역자원 확보와 병역부담의 형평을 기하고자 하는 것으로 입법 목적이 정당하고 형벌로 병역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고 했다.

그러나 헌재는 대체복무제를 병역의 종류로 규정하지 않은 같은 법 5조는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대체복무제가 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한다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병역종류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과 그에 따른 입법부의 개선입법 및 법원의 후속조치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이에 헌재는 병역의 종류를 현역·예비역·보충역·병역준비역·전시근로역 등으로만 규정한 병역법 5조를 2019년 12월31일까지 개정하라고 판시했다. 해당 조항은 개선입법이 이뤄질 때까지는 효력을 유지한다. 그러나 기한까지 대체복무제가 반영되지 않으면 2020년 1월1일부터 효력을 상실한다. 이 경우 병역을 부과하는 근거가 사라져 병역 집행이 공백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결국 헌재는 이 같은 혼란을 막기 위해 대체복무제도를 시급히 도입하라는 사인을 보낸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사실상 위헌
이로써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규정 자체는 합헌으로 일단락 됐으나 대체복무제 도입을 통해 이들이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구제의 통로를 열어줘 실질적으로는 병역거부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자유와인권연구소 박성제 변호사는 "내년 12월31일까지 대체복무가 입법되지 못하더라도 법 이론상으로는 입영거부 시 병역법에 따라 당연히 처벌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이번 판결에는 기존에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를 만들어놓지 않았다는 '입법미비'로 인해 이들에게 책임을 완전히 전가할 수는 없다는 취지를 내포한다. 사실상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은 인정한 셈"이라고 풀이했다.

한국기독교연합 대표회장 이동석 목사도 "현행 병역법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되 징역형 외에 대체복무를 허용해 모법인 병역법 자체를 유명무실하게 만들 위험성이 있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그는 "병역 거부자를 법에 따라 처벌하되 그 수단이 징역형이 아닌 대체복무라면 앞으로 군대 가기 싫은 이들로 하여금 안심하고 대체복무를 하라고 국가가 등 떠미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합리적 대체복무' 어떻게 마련하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결국 대법원으로 공이 넘어갔다. 대법원은 오는 8월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공개변론을 진행하는데 무죄 판례를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급심들도 당분간은 유무죄 판단을 유보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정부와 국회는 대체복무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국민 대다수가 수용 가능한 합리적 제도 마련이 관건으로 떠올랐다. 헌재의 이날 결정과는 별개로 지금까지 국회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해 대체복무를 도입해야 한다는 법안 3건이 계류돼 있는 상태다. 

홍익대 음선필 교수는 "대체복무제 도입에서 가장 중요한 2가지는 우리나라가 양적·질적으로 국방력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유사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현역병과 국방의무 부담의 형평성을 맞추는 것"이라며 "그간 집총을 거부하며 순수 민간부문의 대체복무를 요구해온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일단 입영시키되 별도의 기초군사훈련과정을 거쳐 '비전투분야'로 배치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박성제 변호사 역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집총 거부'에서 점차 '입영 거부'로 쏠린 이유는 징역 기간에 있었다. 입영을 거부할 때는 1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지만 집총을 거부할 시 군형법의 항명죄로 2~3년형을 선고받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집총이 필요 없는 비전투분야에 투입시켜 군대 안에서 대체복무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정 종교로 개종해 허위로 대체복무를 하는 등 대체복무가 또 하나의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처럼 복무 기간을 현역보다 더 길게 설정하거나, 대체복무 지원자의 양심을 주관적으로 감별할 수 없는 만큼 절차의 객관성이 확보돼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언론회는 헌재의 판결 직후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지난달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특정종교에서 주장하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경우 군에 입대해야 할 19세~29세 사이의 청년들이 그 종교로 개종할 마음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21.1%였다"며 "(대체복무 도입 전) 충분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하며 동시에 장병들의 고생의 가치가 절대 훼손되지 않도록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회는 나아가 '양심적'이란 용어 사용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자칫하면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의무를 다한 국민들을 '비양심 세력'으로 역차별 할 수 있기 때문. 언론회는 "그동안 청춘을 바쳐 국방의 의무를 다한 사람들에게 '양심적 병역거부'는 매우 불쾌하게 다가올 수 있다. '종교적 신념' 혹은 '특정 종교의 교리에 의한'이란 용어로 바꿔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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