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첫 실수, 마지막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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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첫 실수, 마지막 소망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8.06.20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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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51

요한계시록 2: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first love)을 버렸느니라.

나는 4년 전부터 구세군이 운영하는 노숙인자활센터(모두 남성들임)에서 그들에게 글쓰기와 인문학을 가르치고, 합창제를 갖고 있다. 그곳에서는 거리의 생활을 벗어나 자기 힘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원을 마련해준다. 정해진 규율과 생활수칙 속에서 지내며, 일하여(주로 공공근로 작업) 자립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 돈도 모으고, 심신이 회복되면 저마다의 삶의 터전을 향해 출발한다. 거주지도 지원해주기에 이곳에서는 끊임없이 나가는 사람과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하지만 오랜 노숙생활에서 무절제하고 게으르며, 술과 각종 악습에 중독되고, 남은 인생에 대한 소망 없음과 철저한 패배감으로 홀로서기의 훈련은 자주 무너진다. 다툼도 빈번하고, 술맛을 잊지 못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먹고 자던 과거의 리듬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스스로 자활센터를 떠나거나 퇴소명령을 받기도 한다. 그들의 변명이나 항변의 이유는 비슷하다. 

그때마다 자활센터의 사회복지사들은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고, 같이 기도해주고 한숨도 쉬어주며, 함께 분노도 터뜨리고, 일부러 욕도 해주며 마음을 잡아준다. 외국의 노숙자활센터는 노숙인들이 일정의 돈을 내고 입소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100% 무료이다. 세수 비누 한 장부터 먹고, 자고, 입고, 각종 취미활동이나 직업기술을 배울 기회도 완전 무료이다. 20대 후반부터 일흔이 넘은 그들은 다시 힘내어 살아보라며 온 힘을 다해 손발이 되어주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바싹 말려버린다. 

그런데 올해부터 나는 이들과 함께 ‘나의 인생 책 만들기’작업을 하고 있다. 저마다 자기의 삶의 과정을 직접 쓰고 그려서 책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몇 달 간 글쓰기와 그림그리기 과정을 거치고 나서 6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올해에도 작년과 똑같은 현상에 놀랐다. 그들의 이야기의 슬픔이나 고통, 기쁨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첫사랑’이다. 그 사연은 저마다 기구하거나, 어이없거나, 아련하지만 대부분 첫사랑을 모티브로 자기 인생이야기를 펼쳐나간다는 것이다. 후회, 안타까움, 원망과 분노, 미련과 애절함 등등 스토리와 감정과 사람 수만큼 다양했다. 글을 쓰는 표정도 그만큼 제 각각이다. 괴로운 얼굴, 또는 마치 그녀가 눈앞에 있는 듯 행복한 모습, 그리고 안타까움에 울먹이는 듯한 얼굴….

그런데 그 첫 사랑에 대한 기억은 너무도 비슷하다. ‘순수하다. 귀엽고 명랑하다. 착하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 하얗고 긴 생머리….’ 그들은 예쁘다는 표현보다 순수함과 착함을 공통적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뭘 몰라서’ ‘너무 가난했던 바람에’ ‘조금만 내가 더 정신차렸더라면’ ‘조언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들은 소망한다. ‘첫 사랑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건 너무 잘 안다. 이제 다시 그런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게 가슴 아플 뿐이다.’ 즉, 그들은 사랑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즈음 매주 화요일 밤마다 주님을 더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사랑, First Love.

첫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형제들 때문에 주님과의 사랑을 더욱 살펴보게 되었다.
우리는 이런 말을 농담처럼 자주 한다. ‘당신 내가 당신 남편(아내)로 있을 때에 잘 해요.’ ‘엄마(아빠)가 그래도 네 옆에 있을 때에 고마운 줄 알고 효도 좀 해.’ 이런 말씀을 하나님도 예수님도 얼마나 많이 하시는지 모른다. “제발 나만 사랑해라. 나만 믿어라. 나만 따라다녀라.” 그래도 영 말을 안 듣거나 겉으로만 듣는 척만 하니 오죽하면 ‘첫사랑’까지 끄집어내어서 말씀하시잖은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아직 주님께서 내 옆에 계실 때에 정신차리자. 그 자활센터의 형제들처럼 ‘…라면’ ‘…했었으면’하는 후회와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줄 잘 알아요….’ 라며 소망조차 없는 서글픈 인생이 되지 말자.

 

함께 기도

하나님. 세상 사람들은 순수해서 첫사랑이 더 소중하다고 합니다. 주님에 대한 성도들의 첫사랑도 마찬가지일겁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의 사랑이 주고받기식의 뻔뻔한 사랑노름이 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세상보다 지혜로운 게 아니라 세상보다 더 지저분해지는 우리의 마음을 고쳐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가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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