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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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8.06.1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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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 목사의 교회사 산책-루터와 독일의 종교개혁(7)

루터의 글들은 인쇄되어 삽시간 내에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이 글에 동조하는 개혁의 동지들을 규합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이들 중 특히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편지’와 ‘교회의 바벨론 포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이라고 합니다.

루터는 1520년 8월 18일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니콜라우스 암스돌프에게 보냈습니다. 루터는 이 글에서 교회의 개혁을 방해하는 세 가지 벽을 지적하였습니다.

첫 번째 벽은, 성직이 세속 권력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권 우위 사상이었습니다. 그는 교권 우위 사상의 기초가 되는 사제주의 사상을 비판하고 만인 제사장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교황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사상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루터는 교황만이 종교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는 세 번째 벽을 허물었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15장 6절에 나오는 예루살렘 교회 회의를 소집한 사람은 첫 번째 교황이라고 불리는 베드로가 아니라, 사도와 장로들에 의하여 회집되었으며, 초대 교회 시대에도 콘스탄티누스와 같은 평신도가 교회 회의를 소집한 적이 있으므로 교황만이 종교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고 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구체적인 교회 개혁안을 전개하였는데, “교황이 그리스도의 후계자가 되려면 우선 청빈을 본받아야 한다.그리고 교황은 독일을 재정적으로 착취하지 말아야 하며 독일 교회는 로마 교회에서 독립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수도원 생활과 성직자 독신주의, 죽은 이를 위한 미사, 면죄증, 탁발 수도를 금할 것 등을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루터는 ‘교회의 바벨론 포로’를 저술했는데, 이는 교회 안에 들어온 미신을 비판하는 글입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미사, 견진, 종부, 결혼, 고해, 성찬(성체), 세례 등 일곱 가지의 거룩한 의식을 가르쳤으며, 이 의식에 참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며 연옥의 형기가 단축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루터는 자신의 수도원 시절의 악습들을 뒤돌아보면서 신자들이 사제의 중재라는 쇠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7성례전을 파기하고 성경에 근거한 고해, 세례, 성찬만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그것도 믿음으로 하는 것만 효과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후에 고해는 멜란히톤에 의해 취소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7성례전으로 사람의 70년 인생을 묶어 버린다고 했는데 루터는 이를 바벨론 포로기 70년에 비유해서 ‘교회의 바벨론 포로’라는 제목을 붙였던 것입니다. 루터는 성찬에 있어서도 희생설에 기초한 로마가톨릭의 화체설을 부인하고 공재설을 주장함으로써 성례전의 이론을 뒤엎었습니다.

또 하나,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를 독일어와 라틴어로 저술하였습니다. 루터는 고린도전서 9장 19절, 로마서 13장 8절, 갈라디아서 4장 4절, 빌립보서 2장 6-7절과 같은 바울 서신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속사람, 곧 신앙에 의하면 모든 것에 대해 자유로운 주인이며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겉 사람 곧 행위에 관해서는 모든 것에 봉사하는 노예이며, 모든 사람들의 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평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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