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몫은 사랑으로 섬기는 것 뿐,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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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몫은 사랑으로 섬기는 것 뿐,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셨죠”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8.06.19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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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장애인 재활의 요람 ‘신망애복지재단’

거주시설부터 교육·직업 재활까지…장애인의 삶의 질 높이다

기적적으로 세워진 시설들, 3개 법인 19개 기관으로 성장

후원 줄어드는 현실 안타까워…“할 일이 아직 너무 많아요”

▲ 부지 면적이 1만여 평에 달하는 남양주 신망애복지재단 전경.

서울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나는 탁 트인 하늘과 풀 내음에 기분까지 상쾌하다. 남양주 수동면에 접어들어 대로를 따라 가다보면 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숲으로 둘러싸인 아담하고 예쁜 집을 만난다. 동화 속 요정들이 숨어살 것만 같은 이곳은 몸이 불편한 이들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호세아 동산’이다.

기자가 방문했던 지난 12일, 운 좋게도 세 달에 한 번씩 마당에서 열린다는 생일파티를 엿볼 수 있었다. 나무와 넝쿨이 자연스레 그늘을 만든 식탁에는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삼겹살과 신선한 쌈 채소, 그리고 과일이 풍성하게 준비됐다. 장애등급 1~2급의 중증장애인들이지만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이들의 얼굴에서는 그늘을 찾을 수 없다.

아름다운 풍경이 전부가 아니다. 휴양지 펜션을 생각나게 할 만큼 예쁘게 꾸며진 내부시설도 호세아 동산의 자랑거리다. 천장에 창을 내 햇볕이 쏟아져 내리는 지하 식당에는 장애인 이용자들이 손수 만든 창작공예품들이 전시돼 있다. 장애인들의 재활을 위한 시설과 스포츠댄스·직장체험·직업재활·사회적응훈련까지 프로그램도 완벽하다.

호세아 동산은 보건복지부에 의해 2013년부터 3회 연속 장애인시설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되는 한 편, 2016년에는 전국 1,700여 개의 장애인시설 중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다. 장애인들의 풍성한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성과다. 단순한 ‘보호’의 차원을 넘어서 장애인들의 총체적인 삶의 질 향상을 꿈꾸고 있는 신망애복지재단과 호세아 동산, 그리고 38년째 이곳을 섬기는 김양원 목사를 찾아 이야기를 들어봤다.

▲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전국 1위에 선정된 호세아 동산 앞에 선 김양원 목사(오른쪽)와 조주현 사모.

“네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

김양원 목사는 그 자신부터가 소아마비를 앓아 한 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다. 지금보다 장애인을 향한 사회적 배려와 인프라 모두 한참 부족했던 시절,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도 참 많이 당했다. 가장 상처가 됐던 것은 공무원 시험을 치르기 위해 도청을 찾았던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장애인은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담당 공무원 앞에서 김 목사는 쓸쓸히 뒤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냉혹한 현실은 마음속에 원망을 키웠다. 유일한 희망으로 매달렸던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건강한 사람을 보면 괜히 미움과 증오심이 불타올랐다. 나중에는 아예 학교까지 가지 않고 거리를 방황했다. 그런 그를 다시 일으킨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기운을 차리고 평범하게 직장에서 일하고 있던 어느 겨울이었다. 찬바람이 칼날처럼 뺨을 스치고 인도는 얼음으로 반들거렸다. 그때 장애인 한 명이 차도에 쓰러져 몸을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둘러서서 웅성대기만 할 뿐 누구도 손 내밀어 주지 않았다.

“두 다리를 전혀 못쓰는데다 양팔도 성치 못해서 팔뚝으로 몸을 끌고 다니던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눈과 먼지로 범벅이 된 그를 어떤 택시도 태워주지 않아 거리에 쓰러져 있었어요. 택시를 잡아 태워 보내고 돌아서는데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 불쌍한 영혼을 누가 책임져야 하나 한탄하고 있었죠. 그랬더니 ‘내가 너를 장애인으로 창조한 것은 저들을 돕게 하기 위해서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더군요. ‘정말 저 같은 것이 할 수 있느냐’고 되물으니까 ‘네가 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맡기겠느냐’고 하셨어요. 그때 가슴 벅찬 감동이 밀려오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이 터져 나왔어요.”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받은 사명만 붙들고 뛰어든 장애인 사역. 시작은 13평짜리 허름한 판자집이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어 추운 겨울 길에서 노숙하던 장애인들을 한 분, 두 분 집으로 모셔와 섬겼다. 그랬던 사역이 이제 3개 복지법인, 19개 기관에 직원만 300명이 넘는 복지재단으로 성장해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 김양원 목사는 이 모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김 목사 부부는 사역에 헌신하며 월셋집과 전셋집을 떠돌아야 했다. 잦은 이사에 지친 조주현 사모는 작은 집이라도 장만하기 위해 적금을 부었다. 그러던 중 경북 상주에서 시각장애인 20명을 모시고 사역하는 여 전도사님의 간증을 접했다. 예배드릴 처소도 없이 농가 주택 마루에서 추위와 더위를 참아가며 예배를 드린다는 소식이었다.

“성령님이 감동을 주시기에 우리 교회에서 컨테이너라도 지어 드리기로 작정했어요. 우리는 준비된 헌금이 없어 작정헌금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헌금함에서 제 이름 석자와 함께 천만 원의 작정헌금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알고 봤더니 아내가 집 장만을 위해 3년 넘게 모았던 적금을 시각장애인 교회를 위해 드리기로 결심한 거였죠.”

나머지 성도들의 헌금까지 총 1,700만원과 무료 시공을 해주겠다고 나선 동료 목사의 손길까지 보태져 시각장애인 교회가 지어졌다. 교회 입당 예배를 드리고 기쁜 마음으로 상주에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김 목사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권사님 한 분이 장애인들을 위해 쓰라며 시가로 10억 원이 넘는 450평 건물을 기증해 주신 것이다. 시각장애인 교회를 위해 내어드렸던 금액의 정확히 100배였다. 그렇게 세워진 것이 바로 호세아 동산이다.

지금은 50명이 넘는 장애인들의 삶의 터전인 엘리엘 동산이 마련된 것도 기적적이었다. 1999년 신망애재활원에는 입소를 희망하는 장애인들이 하루에도 10여 명씩 찾아 왔다. 하지만 정원을 초과할 수 없는 법인의 특성상 눈물 흘리며 돌아가는 장애인들을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장애인들을 위한 더 넓은 공간이 절실했다. 그때 자신을 보살이라고 밝힌 40대 후반 아주머니가 2만2천 평의 땅을 100억 원에 내놨다. 하지만 김양원 목사와 신망애교회의 수중에는 교회 부지가 아파트 용도로 넘어가며 마련된 15억 원이 전부였다. 너무 차이가 나서 포기하려는 순간, ‘그 땅은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땅이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보살을 찾아가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원 설립 계획을 밝히고 100억 원이 없다는 사실도 솔직히 말했다. 결과는 문전박대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땅을 놓고 간절히 기도하던 어느 날 보살 아주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기가 죽을 지경이 됐으니 제발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사정은 이랬다. 보살 아주머니는 남편이 죽은 후 매일 그 땅 가운데 있는 돌 위에서 불공을 드리며 지냈다. 그런데 김양원 목사가 다녀간 다음날 불공을 드리는데 하늘에서 엄청난 불빛이 돌단을 비춰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가 이 집의 주인이다’라는 음성이 똑똑히 들렸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당신이 누군데 내 땅을 당신 것이라고 하십니까” 물었더니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답했다고 했다.

“하나님의 역사로 원래 가격 100억 원의 10%밖에 안 되는 13억5천만 원에 땅을 구입할 수 있었어요. 법인의 이름을 짓기 위해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저에게도 나타나셔서 ‘내가 주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시설의 이름이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뜻의 ‘엘리엘’ 동산으로 붙여지게 된 겁니다. 보살 아주머니가 늘 불공을 드리던 돌에는 이제 엘리엘 동산의 이름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록한 기념패가 세워져 있죠.”

장애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신망애 복지재단의 장애인 사역은 단순히 돌봄에서 그치지 않는다. 처음부터 사역의 목표를 장애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당당히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맞췄다. 특히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하는 직업 재활은 장애인 재활 사역의 꽃이다.

신망애 복지재단은 법인 내 4개의 직업재활 시설을 갖추고 장애인 180여 명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플라스틱 가공품, 쓰레기봉투, 주방세제 등을 만들어 신망애라는 자체 브랜드로 판매해 수익까지 낸다. 공장의 문은 지역 사회에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들에게도 열려 있다. 수당과 복지, 인권보호도 전국 최고수준이라 남양주 지역의 장애인 부모들은 자녀를 신망애에 취직시키는 것이 꿈이라고 김 목사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3개 법인 19개 기관으로 성장해 장애인을 섬기고 있는 신망애 복지재단이지만 최근 재단을 향한 후원이 많이 줄었다. 난치병 딸을 위해 후원금을 받아 놓고 오히려 딸을 학대했던 ‘어금니 아빠’ 사건 등 매스컴에서 복지 시설을 부정적으로 비춘 영향이 컸던 탓이다. 직원들이 주변 지인들에게 후원을 요청하면 “제대로 된 곳인지 잘 알아보고 해야 돼”라는 말을 먼저 들을 정도다.

“저부터가 장애인인데 장애인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요. 직원들에게도 시설 장애인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은 곧 나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해요. 장애인들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모든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보니 한 번 방문했던 자원봉사자들은 끊이지 않고 찾습니다. 아직 장애인들을 위해 할 일이 너무 많은데 후원이 줄어드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신망애 복지재단은 이제 규모를 키우기보다 내실을 기하는 것에 집중할 생각이다. 함께하고 있는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더 집중하고 싶어서다. 장애인 사역을 시작하고 벌써 40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김 목사지만 장애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그의 열정은 아직도 데일 듯 뜨겁다.

“장애인이 도움을 요청해오면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생각하고 돕습니다. 제 몫은 사랑으로 섬기는 것뿐이고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죄인 된 우리를 아무 조건 없이 자녀삼아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가 섬김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은 또 동일한 축복을 부어주세요. 장애인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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